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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교회란 무엇인가-『지하교회를 준비하라』 5부

Posted by Rev. Eric Foley on with   Comments

(리처드 웜브란트 목사의 저서 『지하교회를 준비하라』(3 덧붙인 폴리 목사의 서론  5부입니다폴리 목사의 서론과 순교자의 소리 전기작가인 머브나이트의 서문이 포함된 『지하교회를 준비하라』는 아마존(Amazon)에서 주문하거나한국 순교자의 소리 웹사이트 도서 페이지에서 참조할  있습니다. 폴리 목사의 『지하교회를 준비하라』서론 1부를 보시려면, 이곳 클릭하세요)

 

지하교회에 대한 우리의 그림은 실제보다는 상상력에 더 기대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그것에 동참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지하교회’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그것을 파괴 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피해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행동하며 숨어있는 오합지졸 집단을 떠올린다. 또는 숲에서 예배를 드리려 집밖을 몰래 나서는 사람들이나 자기 집에서 담요를 뒤집어 쓰고 촛불을 켠 채 속삭이듯 찬송을 부르거나 성경을 읽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들이 전혀 거짓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하교회를 오합지졸이나 그것의 은밀함, 파멸 일보직전의 모습으로만 정의 내려서도 안 될 것이다. 지하교회는 핍박 때문에 존재하게 된것이 아니다. 핍박은 지하교회를 드러내 보일 뿐, 그것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일반적인 교회가 치명적인 공격 때문이든 내부적 붕괴 때문이든 더 이상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을 때, 지하교회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구조로 드러나게 된다. 지하교회는 그러한 상황 아래 드러날 뿐, 기독교인들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 는 주의 가르침에 다 함께 순종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하교회는 숨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땅에 심겨진 씨앗처럼 세상에 대하여 이미 죽은 교회의 일부이기 때문에 지하교회인 것이다. 세상에 대해 이미 죽었으므로, 지하교회는 세상의 공격에 휘둘리지 않는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힐 때에도, 지하교회는 계속해서 잘 서있을 수 있는 것이다.[2]

이것이 일반적인 교회와 지하교회가 핍박에 반응하는 방식의 차이를 설명한다. 일반적인 교회는 핍박에 대해 공공기관처럼 반응한다. 일반적인 교회는 공격에 맞닥뜨리면 이익이나 재산, 권리, 생활양식이나 신념을 보호한다. 사실은 이러한 것들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 두려움은 자신을 위협하는 대상에 맞선 전투, 이를테면 법정 소송이나 시위, 데모 또는 여론 및 교육 방면의 시도들 속에서 분명해진다. 분노와 자포자기가 외부로까지 끓어오르고 사회 전반을 향한 일반 교회의 기독교적 증거를 손상시킨다. 어떤 충돌에서는 이기고 어떤 충돌에서는 지겠지만, 어느 쪽이 됐든 교회에 대한 대중적 반발은 강화된다. 마침내 일반적인 교회는 자기 적들과의 타협을 정당화하고 자신과 똑같이 하기를 거부하는 일원들을 목청껏 비난하면서, 걸출한 교회들과 신학자 및 교단과 더불어 스스로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이 변절자들은 박해자들과 똑같아지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머지 교회는 자기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려 기를 쓰며 재정적, 물리적, 영적으로 스스로를 소진해 버린다. 교회의 신학과 실천은 교회 자체와 그 실행들을 지키느라 왜곡되고, 되려 믿음이 교회를 섬기는 과정에서 그냥 담요를 뒤집어 써버리듯 기독교를 아무렇게나 끌고 가버린다. 이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성(性) 혁명의 급습과 침투 아래 일반적인 교회가 계속해서 휘청대는 동안, 특히 미국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고난을 감수하는 사랑을 단련함으로써 특징지어진 지하교회의 방식이 아니다. 지하교회는 한 대상을 향한 사랑one love을 가진 교회이며, 그 사랑의 대상은 자신이 아니다. 이미 죽은 까닭으로, 지하교회는 자기를 방어하거나 보존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 대신 오직 주만 섬기는 데 자유롭다. 오로지 하나님의 온전하신 말씀을 듣고 행하는 데에만 계속 집중하며, 자기에게 맡겨진 신학적 유산, 즉 교회의 ‘소망’에 있어 아무것도 더해지거나 등한시 여겨지지 않도록 이를 청지기처럼 관리하는 것이다. 지하교회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라는 주님의 경고를 유념해 왔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로 세상의 반대에 타격을 받지않는다. 또한 “그러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는 주님의 위로 또한 마음에 새기고 있어 두려움으로 인해 움직이지 않는다. 지하교회는 검(劍)을 내려 놓으라는 주의 명령을 따라 세상의 ‘검’, 즉 법정이나 언론, 정치에 맞서 싸우지 않고 대신 오직 어린 양의 피와 교회의 증언으로만 무장한다.[4] 욕을 먹더라도 욕하지 않고, 저주받으나 저주하지 않으며, 핍박 당하지만 축복하고, 살해 당했어도 용서하는 것이다. 지하교회는 자신을 세상에 맡기지 않는다. 세상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또한 지하교회는 숨지 않는다. 세상의 적의에 대해 완벽하게 인지한 상태에서 자신의 사역을 수행하며 그에 따라 전략을 세운다. 그들은 항상 섬기되 자기 원수조차 언제나 주께 하듯 섬기는데, 이는 세상과 같아짐으로써 세상을 섬기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대가를 기쁘게 치르며, 그리스도의 이름이 고난 받을 만한 가치가 있음을 앎으로 인해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을 모두 기쁨으로 여기는 것이다.[5] 세상이 해명을 요구하면, 지하교회는 언제나 자신이 가진 소망의 이유를 설명할 준비가 되어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6]

요컨대 지하교회는 성(性) 혁명과 그 유입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순히 계속 교회이고자 한다. 믿음이 마치 교회의 종인 것마냥 기독교를 끌어와 덮지 않는다. 또한 보편적인 믿음에 의한 경외와 영광이 남아있어 어떤 한 주제에 대한 교회가 되기를 거부한다. 진정 필요한 것은 믿음을 지키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다가 죽는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 죽음은 폭력적인 순교를 통해 한 순간에 일어날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가치 있는 순교라 여겨져 온 바대로 자신과 세상에 대하여 죽음으로써 매일 일어날 수도 있다.

역사 속에서 지하교회가 거의 언제나 건물이나 법적 허가, 또는 세상적인 자원들을 갖지 못한 모습으로 묘사된다면 이는 단지 그들이 ‘벗어버리는 것’을 배워왔기 때문이며, 그들이 벗어버린 것은 자본주의 지배자들이나 억압적인 도덕성 또는 흔히 시대착오적인 성(性)윤리가 아니라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것들”이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7]

지하교회는 교회가 건물이나 교파, 재산이나 삶의 방식, 자기 이익 등을 수호하기 위해 부르심 받은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바로 그 교회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지하교회를 준비한다는 것은 성(性) 혁명에 대항하여 싸울 준비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싸우지 않을 준비를 하라는 의미이다. 이는 지하교회 위에 걸터앉아만 있을 뿐 궁극적으로 그것의 일부가 되지는 못한, 그리스도의 영감으로 된 조각품인 일반적 교회의 철거와 몰락, 시련을 준비하라는 뜻이다. 지하교회를 준비하는 것은 세상에 의해 영광의 모든 흔적들이 우리로부터 벗겨지고 주의 가지신 영광 외에는 우리의 헐벗음에 걸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 때, 곧 따가운 스포트라이트가 우리에게 비칠 그날에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1] 요한복음 12장 24절(개역개정) 참조.

[2] 마태복음 7장 25절(개역개정) 참조.

[3] 요한복음 16장 3절(개역개정) 참조.

[4] 요한계시록 12장 11절(개역개정) 참조.

[5] 야고보서 1장 2절, 사도행전 5장 41절(개역개정) 참조.

[6] 베드로전서 3장 15-16절(개역개정) 참조.

[7] 히브리서 12장 1-2절(개역개정)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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