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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교회가 유일한 억압적 존재로 선정되었는가-『지하교회를 준비하라』 2부

Posted by Rev. Eric Foley on with   Comments

(리처드 웜브란트 목사의 저서 『지하교회를 준비하라』(3) 덧붙인 폴리 목사의 서론 2부입니다. 폴리 목사의 서론과 순교자의 소리 전기작가인 머브나이트의 서문이 포함된 『지하교회를 준비하라』는 아마존(Amazon)에서 주문하거나, 한국 순교자의 소리 웹사이트 도서 페이지에서 참조할 있습니다. 폴리 목사의 『지하교회를 준비하라』서론 1부를 보시려면, 이곳 클릭하세요.)

 

자유세계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기독교와 성(性) 혁명(the Sexual Revolution) 간의 충돌 한복판에서조차, 성(性)에 대한 교회의 시각이 전반적으로 사회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지하교회로 내몰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 하지만, 이미 80년 전에 일찍이 수많은 교회의 대적들은 사회주의가 아닌 성(性)만이 기독교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결론을 각각 이끌어내고 있었다.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선언문에 이렇게 적었다. “기독교에 대적할 결정적 전투는 () 혁명 정도에서야 가능한 싸움이다.”[1]

그런데 왜 성(性) 혁명이 자유세계 교회들에 대적하는 결정적 전투를 가능케 할 유일한 혁명인 것일까? 이는 경제나 정치에 관한 화두들보다 성(性)윤리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훨씬 심도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性)윤리는 하나님과 인간 존재에 대한 우리 이해의 핵심을 찌른다. 기독교가 제대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정치나 경제의 특별한 구조가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성(性)에 대한 특별한 이해이다. 존 리스트(John Rist)가 말했듯이 인류의 역사란 언제나 ‘절대 자치권을 차지하려는 유일신과 인종간의 분쟁’이다.[2] 성(性)은 하나님의 목적을 겸손하고 신실하게 수행하거나, 인간에게 가장 교만하고 지독한 자치권을 부여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성(性)과 과학 또는 성(性)과 무신론 간의 동맹은 성(性)의 독립 선언이다. 계몽주의 시대에 과학은 그 연구의 영역을 ‘경험으로 입증할 수 있는 사실들’로 축소시켰다. 더 이상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론(目的論) 원인을 고려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경험으로 입증할 수 있는 사실’[3]이 아니라는 이유로 과학은 하나님에 대해 실제로 더 이상 아무 신경도 쓰지 않게 되었다. 이는 곧 과학 만능주의 철학의 발생으로 이어졌다. 과학 만능주의는 하나님만 과학의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며, 과학 원리의 최대 확장에 충실하기 위해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혀, 그 어떤 것도.”라고 주장한다.[4] 가장 유명한 마르키 드 사드(Marquis de Sade)의 최초 연구나 이후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의 연구와 같이 성(性)이 그러한 방식으로 연구될 때, 성(性)은 생식(生殖, procreation)을 위한 것일 수가 없다. 과학 만능주의에 따르면, 실제로 성(性)은 그 무언가를 위한 것일 리가 없다. 과학이 이러한 방식으로 성(性)을 연구하자 아우구스토 델 노체(Augusto del Noce)는 “그렇다면 남아 있는 것은 생명 에너지(vital energy)뿐”[5]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이 생명 에너지에 대한 어떠한 통제도 ‘억압(repressive)’[6]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스테판 아두바토(Stephen Adubato)가 주목했던 것과 같이 이 ‘발견’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교회가 억압자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금욕적인’ 도덕적 세계관은 인간 개인의 자유와 충족에 대한 미래적 시야를 축소시켰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중략) 성(性)적 억압이 인간 개인에게 해를 입힌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과학적이고 심리학적인 근거에 힘 입어, 그들은 그 어떤 도덕적 영향도 거부하는 성(性)적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다. “성(性)은 즐거운 경험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치료적 과제는 비정상적인 특질 (neurotic character)을 정상적인 특질(genital character)로, 도덕적 규제를 자기 통제로 바꾸는 과정 중에 있다.” 성(性)혁명은 유토피아의 새 시대를 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7]

공산주의 혁명이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 압제자로 인한 ‘억압에 저항하라’고 촉구했듯이, 지금 성(性) 혁명은 교회라는 성(性)적 압제자로 인한 ‘억압에 저항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8] 피터 레이하르트(Peter Leithart)는 성(性) 혁명의 전투적 함성으로써 “우리 욕망에 대한 그 어떤 제한도 존엄성에 대한 공격이다. 성적 억제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며, 모든 금지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성(性) 혁명은 성(性)도덕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이제 정숙이나 순수, 절제와 같은 이전의 개념들은 억압적이고 비정상적으로 여겨진다. ‘변태 성욕’의 범주 또한 사라져야 한다. 그 이면에는 새로운 성(性)적 형이상학에 대한 반(反)목적론이 깔려있다. 성(性)은 성(性) 자체를 넘어선 목적, 즉 생식과 같은 목적이 없을 때 그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해 낸다. 그러므로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동성애 표현은 가장 순수한 사랑의 형태로 간주’되어야 한다.[9]

성(性)으로부터 그 어떤 목적도 박탈해버리자(과학만능주의 입장에서는 해방이지만), 역사적으로 ‘단지 우리가 성(性)적 존재이자 의미로서 실제 경험하는 것들 중 아주 작은 일부’[10]이기만 했던 신체적, 정서적인 측면들은 성(性)에 대한 우리 경험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또한 성(性)이 인간의 핵심인 ‘생명 에너지’인 까닭에, 그 신체적, 정서적인 성(性)적 경험들이 개인 정체성의 중심이 되었다. 교회의 성(性)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움직임 속에서 성(性) 혁명은 가장 강력하게, 또는 매력적으로 경험한 신체적이고 정서적인 특성들을 통해 ‘자기 정체성(self-identify)을 가지라’고 부추긴다. 그렇게 우리의 몸은 한낱 ‘진흙,’ 또는 ‘자기 뜻대로 사용 가능한 원료’가 되고 만다.[11]

 

[1] 매튜 헨리, 「형이상학적 붕괴로서의 근대성」 (2016, 원문 발췌-https://www.thecatholicthing.org/2016/07/28/modernity-as-metaphysical-collapse/)

[2] 존 M. 리스트, 『Augustine Deformed: Love, Sin, and Freedom in the Western Moral Tradition』 (2014,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 p. 10)

[3] 마이클 쿡, 「성() 혁명은 왜 일어 났는가? (2016, 기고문- http://www.intellectualtakeout.org/blog/why-did-sexual-revolution-happen)

[4] 각주3과 동일

[5] 피터 레이하르트, 「성()과 전통」(2015, 기고문-https://www.firstthings.com/web-exclusives/2015/10/sex-and-tradition.)

[6] 스테판 아두바토, 「혁명적 이끌림」 (2016, 기고문-http://www.hprweb.com/2016/06/a-revolutionary-attraction/.)

[7] 아두바토, 2016.

[8] 마이클 쿡, 2016.

[9] 피터 레이하르트, 「성()과 전통 」 (2015, 기고문- https://www.firstthings.com/web-exclusives/2015/10/sex-and-tradition)

[10] “성관계를 ‘성립’시키고 그에 대한 제한과 허용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실제적이고 적절하게 우리의 성적 취향을 정의내리는 것은 우리 전(全) 생애의 순서이다.” 에브라임 래드너, 『A Time to Keep: Theology, Mortality, and the Shape of a Human Life』 (2016, 미국 텍사스주(州) 웨이크 베일러대학교 출판부 , Loc. 979)

[11] 찰스 J. 샤퍼, 카푸친 작은 수도회 브리검 영 대학교 강연: 「깨어나라-지금 우리의 국가에서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 (2016, 기고문-http://archphila.org/address-at-brigham-young-university-awakenings-living-as-a-believer-in-the-nation-we-have-now-2/#_ednref4)

Tags: 성(性)혁명, 자유세계, 지하교회를 준비하라, 마르키 드 사드, 피터 레이하르트, 스테판 아두바토, 초현실주의자, 빌헬름 라이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