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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M 칼럼

무슬림 난민에 대한 기독교인의 반응

Posted by Rev. Eric Foley on with   Comments

요즘 한국 사람들, 심지어 한국 기독교인들도 무슬림 난민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특히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예멘 이민자들은 가짜 이민자예요. 그들은 우리나라 여성들을 훔치고 한국을 이슬람화하도록 훈련 받았어요!.”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될 까봐 염려하고 있습니다. 윈스턴 처칠 같이 반응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 섬(영국)을 지켜낼 것입니다. 해변에서 싸울 것이고, 상륙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들판과 거리에서도,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의 중심은 그분의 아들이신 주 예수님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로마서 58절에서 이렇게 우리를 가르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결코 알지 못하는 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원수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장 소중한 것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원수들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316절의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역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사용해서 그분의 사랑으로 그분의 원수에게 다가가길 원하십니다. 그 소중한 것은 (나라)’(윈스턴 처칠이 말했듯이), 결혼, 우리 각자의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그 원수들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모든 것을 잃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치루신 대가이고 우리는 그 분을 따르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도 우리 원수를 사랑합니다, 죽기까지 말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무슬림에 대항해서 싸우라고 우리를 성곽 틈새로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12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입니다.

우리는 무슬림 난민들이 안전한 사람들이며 우리를 향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죄의 노예이고, 그들의 뜻은 사탄에게 매여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베소서 2장에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 대해 말한 것, 전에 우리도 죄인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에베소서 2:1-5)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에베소서 2:11-13)

예멘 난민들을 볼 때, 우리는 제주도에 위협이 되는 테러리스트들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죄인이고, 사탄에 사로잡힌 자 그리고 이 세상에 소망도, 하나님도 없는 사람들로 바라봅니다. 우리가 한때는 그들과 같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아픈 마음으로 그들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93절에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슬림 난민들도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된 방식대로 주님을 알 수 있도록 도와줄 수만 있다면,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 무슬림들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좋겠지요, 하지만 한국 선교사들이 예멘에 가서 전도할 수 있어요. 한국은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되기에는 너무 귀해요. 너무 위험해지니까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에게 부르짖어 기도하신 예수님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6:39)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아버지, 무슬림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게 해주세요. 하지만 우리는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바울은 사도행전 1726-2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땅도 주님 것이고, 사람들도 주님 것이고, 연대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 분은 사람들을 보내어 더듬어 찾게 하시고 그들이 주님을 찾는 곳도 정하십니다. 우리는 주님께, “주님, 이 난민의 잔을 우리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지만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그는 기독교인들을 죽인 살인자였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죽이기 위해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환상을 보여주셨고, 사울은 바울이 되었습니다. 『꿈과 환상』이라는 책을 보면, 그리스도께 나아온 무슬림 중 40%가 꿈과 환상을 통해 주님을 만났다는 놀라운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책을 읽으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한국에서도 그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멘 사람들이 왜 왔는지, 그들이 과연 신뢰할만한 사람들인지, 기독교인인 우리를 대적해서 숨통을 조이는사울 같은 사람은 아닌지, 누가 알겠습니까? 제주도에 있는 예맨 사람들 중 그리스도를 이미 꿈 속에서 만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그 그룹 안에 그들의 조국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할 바울이 될 사울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복음화 되지 않은 나라 중에 하나인, 그들의 조국 말입니다.

결혼 생활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하나님에게만 살아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원과 계획, 목표를 위해 우리 나라를 사용하려는 욕망을 가진 것에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사용하실 수 있도록 반드시 다시 돌려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그분의 목적에 때라 그 경계를 정하시도록 내어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뜻이 아니라 그분의 뜻대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