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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닥친 대비의 시기-『지하교회를 준비하라』 6부

Posted by Rev. Eric Foley on with   Comments

(리처드 웜브란트 목사의 저서 『지하교회를 준비하라』(3 덧붙인 폴리 목사의 서론  6부입니다폴리 목사의 서론과 순교자의 소리 전기작가인 머브나이트의 서문이 포함된 『지하교회를 준비하라』는 아마존(Amazon)에서 주문하거나한국 순교자의 소리 웹사이트 도서 페이지에서 참조할  있습니다. 폴리 목사의 『지하교회를 준비하라』서론 1부를 보시려면, 이곳 클릭하세요)

 

우리는 지하교회를 준비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성(性) 혁명에 있어 우리는 방해물이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4장 24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했으며, 우리는 그것을 과한 억압으로 여기거나 벗어 던지지 않는다. 성(性) 혁명은 우리의 입지를 사수하려는 우리 선택의 문제이기보다는, 우리에 대항하여 자기 입지를 사수하기 위해 자유세계 정부와 사람들이 이미 선택해버린 것들에 대한 문제이다.

교회와 자유세계 모두의 자녀들로서, 그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자유의 억압자로 묘사되는 것에도 명확하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께서 주시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세상은, 자유로운 세상에서조차 죄 짓지 않을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죄 지을 자유에 힘을 실어 준다. 그런 다음 언제나 자유세계는 하나님의 것들에 대적해왔던 ‘세상’의 또 하나의 면모로써 자신을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기독교는 남한을 포함한 그 어떤 사회든지 그것이 세워지는 기본적 전제들에 도전하게 됨으로써 남한에서 북한 이상의 인기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서 논의해야 할 것은 우리가 살기에 더 좋은 곳(공산주의 사회 또는 자본주의 사회)이 어디인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시기에 더 좋은 곳이 어디이며 그분께서 환영 받는다고 여기시는 곳이 어디인가 여부이다. 사실상 하나님은 북한보다 남한이 그 분을 더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에서 모두 똑같이 모욕 당하고 있다 여기시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공산주의 혁명의 하나님이 아니셨던 것만큼이나 성(性) 혁명의 하나님도 아니시기 때문이다. 이 혁명들은 둘 다 유일신 하나님과의 분쟁에서 ‘자신의 절대 자치권을 차지하려는 인종’ 에 의해 주조된 동전의 양면으로 드러났다.[1] 두 혁명은 동일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 양측이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서 서로를 응시할 때, 이는 한 혁명에 의해 오랫동안 기만 당해온 자들이 이제 다른 혁명으로 인해 새롭게 기만 당하는 자들을 응시하고 있는 셈이다. 남한 정부는 그저 성(性) 혁명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가장 열렬한 선동자들 가운데 서 있다. ‘강남 스타일’이 나오기 훨씬 전인2011년, 소위 ‘문화 콘텐츠 수출’로 불리는 케이팝K-pop과 한국 드라마가 거둬들인 수익이 이미 4조 820억 원(2017.01.04 기준, 미화40억 달러)으로 추산되었다. 정부는 이러한 문화적 자산의 가치가 100조 원(2017.01.04 기준, 미화 832억 달러)이라 주장한다. 또한 국가 예산의 1%를 ‘대중문화 육성’에 편성하고, 이 ‘육성’을 성공시키기 위해 11조 1,947억 원(2017.01.04 기준, 미화 10억 달러)의 초과 자금을 유지한다. 이는 정부가 케이팝 뮤직 비디오를 외국어로 번역하고, 다른 나라 TV 방송국에 한국 프로그램을 방송해줄 것을 요청하는 데 납세자들의 돈을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 이다.[2] 한국의 스타들이 성형수술이나 새로운 헤어스타일링을 받거나 특정 메이크업, 핸드백 또는 새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한국 경제는 소비자 경쟁으로 인해 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 정부는 가치 중립적이기가 매우 어렵다. 오늘날 한국 드라마나 케이팝 노래들을 10년 전 것들과 비교해보라. 심해지는 선정성과 더불어 성(性)과 관련해 훨씬 대담해진 방식을 포용하는 것에 주목하라. 남한 정부는 전 세계 문화적 전개를 예민하게 간파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 콘텐츠에 이러한 ‘가치 전환’을 반영하는 것을 ‘전 세계 한국 문화 유통 경로와 소비자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로 여긴다.[3]

남한 정부는 경제적인 목적으로 문화 자산을 육성할 뿐만 아니라 사상적 투쟁을 위해 그것을 이용하기도 한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국경을 넘어 울리는 소리는 더 이상 정치적 선전이 아닌 케이팝이다. 상대를 개방시키려는 일환으로 MP3파일이 나 풍선, 드론에 담아 날려 보내는 것도 자본주의에 대한 선전이 아니라 한국 드라마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性) 혁명에 맞서는 데 있어 남한 정부가 우리의 동맹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사실 한국 교회와 한국 정부 사이의 역사적으로 강력한 연대를 감안할 때,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한국 정부가 우리에게 자신의 동맹이 되어 줄 것과, 자신들이 가장 진보적인 한국의 국가적 이득이라 믿는 바를 우리가 지지해주리라 기대하고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덴마크, 핀란드, 아일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마리트 얀테라 야레보흐Maarit Jänterä-Jareborg라는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Uppsala University의 법학 교수가 있다. 마리트 교수는 스칸디나비아 정부가 성(性) 혁명과 관련하여 교회에게 기대하고 있는 바에 대하여, 기독교적 관점이 아닌 스칸디나비아의 사회 법률적 관점으로 글을 쓴다. 그녀는 글에서 “정부는 교회, 적어도 국가와 관련된 국립교회Folks’ Church[4] 가 새로운 국면에 적응하기를 기대할 것이다. 정부가 그들을 장악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5] 라고 매우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에 있어 교회는 정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모든 교회가 처음에는 동성(同性)의 배우자 승인을, 그 이후에는 동성 결혼을 반대했었음을 고려해볼 때, 동성애 관계의 법적 공인에 대한 국립교회들의 순응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국립교회로서 이 교회들의 역사적 역할과 지위는 각 나라 인구 대다수가 속해있는 쪽을 향한다는 것이 일반적 설명이다. 전체 사회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국립교회는 정부와의 관계가 약화되는 것에 개의치 않으면서 사회적으로 유력한 주류 가치들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가치들을 계속 고수할 수는 없다. 실례로 몇 년 전 핀란드 교회의 한 주교가 공개적인 인터뷰에서 동성애 관계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하자, 이 사건은 수천 명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게 만들었으며 핀란드 언론의 전국적 주요 뉴스 거리들을 양산했다.[6]

마리트 교수는 교회와 국가가 성(性) 혁명을 두고 양측 모두를 평화롭게 만들어 준 타협점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성서 신학의 관점에서, 사랑에 대한 계명은 성경에 있는 다른 모든 계명과 금지 규정들을 능가한다. 동거라는 형식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결정적 요소는 특정 성경구절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에게 득()이 되는가 또는 실()이 되는가 여부이다. 이는 교회가 동성애 커플의 결혼에 대한 입장을 결정할 때 그들이 해야 할 적절한 질문이란, 무엇이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해로운가여야 한다는 의미이다.[7]

이 같은사랑에 대한 정의는 기독교 전통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전적으로 부인해 버린다. 그것은 바로 우리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음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고 세상을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그의 은혜를 통한 재질서)로서의 사랑이다. 이천년 된 사랑에 대한 이 전통적 정의를 재조각하려는 끌을 거부한 기독교인들은 그로 인해 점점 더 편협하고 잠재적으로 위험하다고 간주되며, 필요에 따라서는 주시, 통제, 감시와 더불어 비웃음까지도 감당하게 된다.

피터 레이하르트가 언급했듯이, 이는 아우구스토 델 노체에 의해 이미 한 세대보다 더 이전에 예견된 바이다. 델 노체는 웜브란트 목사와 거의 동시대에 이탈리아에서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겪었던 기독교 철학가이다. 그는 곧 있으면 성() 혁명으로 인해 자유세계의 교회가 공산주의 치하에서 마주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고난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레이하르트는 델 노체가 성() 혁명에 직면하여 믿음을 타협하기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권위를 지닌 초월적 가치를 여전히 믿고 있는 성도들은 소외를 당하고 2류 시민(사회적 약자)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결국도덕적강제 수용소에 갇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도덕적 형벌이 신체적 처벌보다 덜 가혹하다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의 끝에는 영적인 형태의 집단학살이 놓여 있다.[8]

현재 북유럽 국가에서 펼쳐지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그 이유를 알아차리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레이하르트가 피력했듯이모든 신학적 견해는 그것이 자유와 공평에 대한 자유(진보)주의의 특정한 시각을 증진시키는가 여부에 따라 판단될 것[9]이다. 교회의 문턱 너머로 확산되도록 허락 받을 유일한 신학적 견해는 성() 혁명의 진압이 아닌, 진보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종교의 자유는 성()에 대한 정부의 관행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예배할 수 있는 자유 정도로 축소될 것이다. 여기서 예배의 자유란, 주어진 우리의 교회 건물 안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말할지라도, 우리가 하는 어떤 것이 그 건물 바깥에까지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슬프게도, 많은 교회들이 역사적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던 타협이다.

지하교회가 교회 건물보다 가정집에서 더 많이 발견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인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대가는 너무나 크고, 재정적 문제란 그 대가들 중 겨우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복음은 너무 위대하여 도덕적 게토moral ghetto(강제 격리 거주지역)에 제한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유세계 정부들이 모두의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 정부가 고려하는 것을 기초로 교회의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확신을 받아들였듯이, 우리도 기독교 자유가 우리로 하여금 지하교회를 준비하도록 만든다고 스스로 확신해야 한다.

 

[1] M. 리스트, Augustine Deformed: Love, Sin, and Freedom in the Western Moral Tradition (2014,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 p. 10)

[2] 멜리사 리옹, How Korea became the world’s coolest brand(2014, 금융란 기고문-http://business.financialpost.com/news/retail-marketing/how-koreabecame-the-worlds-coolest-brand)

[3] 정주원, 이은정,K-pop, K-dramas to embrace universal values to increase appeal(2016, 연합신문 뉴스포커스 기고문-http://english.yonhapnews.co.kr/focus/2016/10/31/88/1700000000AEN20161031007600315F.html)

[4] 유럽에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는데 국립교회와 자유교회가 바로 그것이다. 국립교회는 유럽 국가의 공식 교회이다. 그들은 정부에게 지원을 받는데 세금으로 운영된다. 반면 자유교회는 정부와 공식적으로 연관이 없으며 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운영된다.

[5] 마리트 얀테라 야레보흐,A Scandanavian Perspective on Homosexuality, Equal Rights, and Freedom of Religion(2016, 잭 프리드맨 외 2명의『Religious Freedom and Gay Rights: Emerging Conflicts in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 Loc. 5595)

[6] 마리트 얀테라 야레보흐(2016, Loc. 5631)

[7] 마리트 얀테라 야레보흐(2016, Loc. 5667)

[8] 피터 레이하르트,Referees, Players, and Religious Liberty(2016, First Things기고문- https://www.firstthings.com/blogs/leithart/2016/09/referees-playersand-religious-liberty)

[9] 위와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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