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Of The Martyrs - Korea

Go

VOM 칼럼

김교신 특집- 제7부 조선을 위한 선교사 

Posted by 현숙 폴리 박사 on with   Comments

 글: 현숙폴리 박사 2016년 1월 25일  

김교신 선생은 오늘날 한국과  세계가  기울여야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교자   사람으로 글은 폴리 현숙 박사(한국 순교자의 소리 대표) 그에 관해  특집 소론(小論)이다. 

김교신의 삶과 죽음을 재검토하는  그를 한낱 한국 교회에 반대했던 민족주의자 기독교인으로 묘사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상기시켜 준다. 사실 김교신의 사명은 한국 교회에 반대하는 것과는 거의 무관했으며 오히려 모든 일이 진정한 조선 기독교를 장려하기 위한 일이었다.   

김교신이 처음 신앙을 갖게 된 곳은  교회가 아니었을뿐더러 심지어 조선 땅도 아니었다(황, 2012, 85). 그는 미국이나 타국이 상정한 대로가 아닌 기독교 신앙을 조선에 도입하려 했던 선교사로 이해되는 편이 더 낫다. 그는 조선이라는 한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따라 진정 조선에 맞는 기독교를 개발하는 것이 급선무라 믿었다. 김교신 자신과 그의 지지자 및 반대자들 모두가 동의하는 바와 같이, 그는 교회가 아니라 조선과 그리스도를 사랑했다. 

명한 부흥사였던 길선주 목사의 제자 명망 있는 장로교회 목사 김인서(1894-1964) [김교신을 비판하면서] 김교신 그리스도(Christ)와 조선(Choseon), 이렇게 2C를 사랑한다고 말하곤 하지만, 자신은 조선(Choseon), 그리스도(Christ), 회(Church), 3C를 사랑한다고 주장했다(황, 2012, 111). 

실제로 김교신은 월간 성서조선 75호 편집자 기고란에 직접 서와 조선-성서를 조선에, 조선을 성서 위에라고 다(김 인용, 2012, 192). 

궁극적으로 조선 교회들은 김교신의 성품이나 그가 했던 사역의 열매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 기독교인을 만드는가에 대한 정의에 근거해 그를 적대시했다.   

칼뱅에 의하면, 참된 교회의 두 가지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하게 선포되고 들리는 것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대로 올바르게 성례전을 집행하는 것이다. 칼뱅은 참된 교회 실제로 복음이 올바로 선포되고 성례전이 제대로 행해지는 곳에 세워져야 한다고 했다. 20세기 초 조선에서는 대부분 교회 교회에 대 이와 유사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와 달리 무교회주의는 말씀 선포하지도, 성례도 하지 않았다(황, 2012, 113). 

김교신에게 있어 조선 기독교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더 중요한 문제는 서양식의 종교의식을 따르느냐 마느냐가 아니었다. 김교신은 자신이 매우 강한 괴물이라 칭하는 것을 물리치기 위해 조선 교회들에게 교파주의를 넘어서라고 촉구했다.  

오늘날 매우 강한 괴물이 기독교인 앞에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교회 안팎을 불문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 싸워야 하는 세대 직면해 있다. 이 세대에 만연해 있는 현 흐름은 참 종교가 무엇인지 분별코자 우리에게 순교자의 피를 흘릴 것을 요구다. 그러한 세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교회 안에서 얻느냐, 혹은 밖에서 얻느냐 논란에 더 이상 관심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받는 자가 있다면 그들을 위해 무덤을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혹 우리 시신을 본다면 우리를 묻어주 바란다(성서조선 100호에서. 김 인용, 2012, 193).  

어쩌면 김교신 마음 더 큰 임무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조선 교회가 끝내 그와 그의 가르침을 거부했다는 것이 김교신을 변화시키거나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훗날 서울시립대 자연과학부 교수가 된 제자  회상한 바에 따르면, 김교신은 교회와 삶의 모든 문제에 관해 담대히 옳은 일을  자유 누렸던 사람이었다.  

영친왕과 비 이방자 여사 그 어머니 순헌황귀비 엄씨가 세운 양정학교를 방문했다. 지역 학교 전체가 깨끗이 청소되었, 교사들은 연미복을 입었으며, 학생들의 작품이 두 교실에 전시되었다.  

500명의 학생 복장을 단정히 하고 길 양쪽에 나뉘어 두 줄로 서 있었다.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영친왕의 자동차 행렬이 도착했다. 의식이 엄숙히 끝나자 곧바로 시찰이 진행되었다.  

그 순간,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학교 건물에서 교문까지 가파른 언덕길을 달려 쏜살같이 빠른 속도로 우리 곁을 지나갔다. 김교신 선생이었다.  

학교가 온통 축제 분위기인 그때, 김교신 선생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고  가고 있었다. 그때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더 정확히 그려진다. 그는 다른 사람 의견 과하게 신경 쓰지 않았고, 담대히 옳은 일을 할 자유를 누렸다(김, 2012, 209).  

김교신 특집- 제8부 “그 어느 때보다 이 시대 김교신이 더 중요한 이유”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