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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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 선언문

한국 순교자의 소리의 사명은 순교자들의 목소리가 침묵 속에 묻히지 않도록 우리의 목소리로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순교자’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계12:11, 개역개정)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충성된 증인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소리’는 이 충성된 증인들의 가르침과 설교, 그리고 그들의 증언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의는 성경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은 갑자기 하늘에서 성경을 내려주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영감으로 된 흠 없는 그분의 말씀을 충성된 증인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셨다. 심지어 성경은 그리스도를 “충성된 증인”(계1:5)이라고 묘사하며, 충성된 증인이 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말해준다. 오직 성경만이 영감으로 된 흠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신실한 증인들의 간증, 곧 순교자들의 소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교회가 ‘참소하는 자’에게 승리할 수 있게 준비시키시는가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계 12:10-11).

이 타락한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증언하는 일에는 사실 죽음이 수반되기도 한다. 이를 기억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순교의 초점은 죽음이 아니다. 순교는 신실한 증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헬라어로 ‘순교자’란 ‘증인’이란 의미이다. 순교자의 소리의 사명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폭력적인 행위를 보도하거나 단지 생존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보다 우리의 사명은 순교자들의 소리가 그들의 신실한 증언에 가해지는 폭력에 의해 침묵 속에 묻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전 세계 순교자의 소리 창립자인 리처드 웜브란트 목사는 루마니아 공산주의 치하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의 증인이었다. 그는 함께 갇혀 있던 한 동료 수감자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죄수 신분이었음에도, 이 사람은 설교를 했다. 교도관들은 그를 감방에서 끌고 나와 때리고 다시 감방에 던져 넣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먼지를 털어버린 다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어디까지 말했던가요?”

때로 신실한 증인들은 죽음, 고문, 투옥으로 인해 자신이 설교를 중단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한국 순교자의 소리는 그들이 중단했던 곳에서 시작한다. 순교자들의 말씀을 찾는 일, 그리고 그들이 처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증거했던 장소에서, 그들이 사용했던 언어로 그 메시지가 계속 살아있게 하는 일을 말이다. 또한, 우리는 이 메시지를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번역해서 그것이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있는 가르침으로 들릴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사역은 우리가 역사를 넘나들 수 있게 한다. 때로 순교자들의 목소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 그냥 잊히거나, 교회가 한때 알고 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로 등한시된다. 한국 초기 기독교 순교자들이 특히 그렇다. 이들이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존경을 받긴 하지만, 그들의 메시지가 교회 모임이나 일상생활 속에서 중요한 목소리로 선포되는 일은 거의 없다. 언약갱신 예배와 라디오 방송에서 그들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그리고 UU학교 및 제자훈련 프로그램과 자료에서 그들의 가르침을 나눔으로써, 우리는 한국 교회 가운데 순교자 영성의 회복을 이루어 나간다. 우리가 모일 때마다 행하는 성만찬을 통하여 한국 초기 기독교인들을 비롯해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우리 이전의 모든 형제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

한국 순교자의 소리가 이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는 세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상 모든 곳의 그리스도인들과 몸을 이루어 그들과 함께 하나의 목소리로 하나의 증언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참된 교회가 없다. 순교를 십자가로 생각해보라. 십자가의 가로 부분은 오늘날 전 세계의 순교자들을 나타낸다. 그리고 십자가의 세로 부분은 모든 역사 속 순교자들을 나타낸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교회의 증언은 우리의 보물이자 책임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받아서 지켜내고 전하는 사명을 우리에게 책임 지우신다.

둘째, 순교자들의 목소리를 우리 자신의 목소리로 만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갈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들은 순교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가 육체적인 핍박과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가는 주님의 손에 달려 있지만,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헌신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죽고 오직 그분을 위해 살기로 언약을 맺는다. 그러므로 순교자들은 폭력적 행위가 아닌 세례의 물을 통해 만들어진다. 신실한 증인의 삶을 사는 법은 어떻게 배울 수 있는가? 우리가 역사상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가 교회에 맡기신 증거를 우리 각자의 증언으로 지켜내고 전함으로써 배울 수 있다.

셋째, 순교자들의 소리가 살아있도록 하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사역에 동참할 , 우리는 그분의 도구로서 섬기는 특권을 얻게 된다. 시편 116편 15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비록 세상이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인들을 침묵시킬 수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마지막 날까지 그들의 소리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지도록 하실 것이다. 요한일서 2장 17절이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라고 말씀했듯이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르심은 순교자들을 우상화하거나 그들의 삶을 박물관에서 기념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히13:3, 개역개정)”하도록 부르셨다. 심지어 그들의 육신이 죽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몸 가운데 순교자 그리고 그들의 메시지와 함께 갇혀 있다. 이 ‘갇힘’을 통해, 우리는 순교자들의 메시지가 살아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먼저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그다음에는 우리의 가정에서, 그리고 우리가 교제하는 성도들 가운데서, 또한 민족과 열방의 기독교인들 가운데서,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나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시려 대신 죽으셨던 이들에게 신실하게 증언하는 증인으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