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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의 이야기

예수쟁이들 #18: 기도의 집에서 파견된 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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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 스크리프니코바(Aida Skripnikova)

19

구소련

1961

어떤 젊은 여인이 길모퉁이에서 시가 적힌 카드를 사람들에게 건네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녀가 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어떤 이들은 그녀의 매력적인 미모 때문에 그것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녀의 눈빛과 미소 속에서 묻어나는 기쁨과 사랑을 보았기 때문에 카드를 받았다. 모든 카드에는 그녀가 직접 쓴 시가 있었다. 각 시마다 그녀가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인 후 경험한 사랑과 기쁨이 담겨 있었다.

이 일 때문에 그녀는 체포되었고 재판에 서게 되었다. 그녀는 법정에서 당당하게 증언했다. “당신네 공산주의자들이 건설하고 있는 사회는 결코 공정하지 못할 거에요.. 왜냐하면, 당신들 스스로가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녀는 1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녀는 석방되자마자 곧바로 그녀가 지하교회를 섬기면서 하던 일로 돌아갔다. 그녀의 뛰어난 미모와 결단력, 그리고 담대함 때문에 공산당 기관지인 <이즈베스티아(Izvestia)>는 그녀를 기도의 집에서 파견된 해적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담대하게 글을 썼는데 그중 하나는 이런 내용이었다. “당신들 무신론자들은 언제라도 서로 만나서 하고 싶은 일들, 즉 대화하고, 책을 읽고, 노래하는 등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서로 방문할 수 없는가? 어떤 법이 이것을 금지하는가? 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때에 기도하고 성경을 읽지 못하는가? 우리는 오로지 교회에서만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당신이 극장 안에서만 영화에 대해 말하거나 도서관 안에서만 책에 대해 말하도록 규제받는다면, 당신은 거기에 따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삶에 온전한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 그리스도에 대해 침묵할 수 없다.” 그녀는 또 다시 체포되었고 이번에는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때에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27살이 되던 해, 아이다는 네 번째 수감 생활을 직면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감옥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믿음을 지켰다. “만약 지금의 상황과는 반대로, 오히려 우리 소련이 다량의 성경을 가지고 있고, 영국에 성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저는 그 성경을 가져다주는데 그 누구보다 앞장섰을 것입니다…… 감옥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성경 없이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누군가 그녀에게 마가복음을 밀반입하여 전해주었다. “제가 복음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간수들이 알았을 때, 그들은 깜짝 놀라 교도소 전체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두 번째 수색에서 그것이 발견되었어요. 저는 그 일로 인해 추운 독방에서 열흘 밤낮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2주 후에 저는 신약 성경을 얻어 석방되는 날까지 들키지 않고 가지고 있을 수 있었지요.

간수들은 여러 차례 수색했지만, 그때마다 주님이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전 그들의 수색 계획을 미리 알아차리고 이 귀중한 책을 잘 감출 수 있었답니다. 많은 수감자들은 기독교인이 아니었음에도 성경 숨기는 일을 도와줬습니다.”

간수들은 그녀를 낙담시키고 믿음을 포기하게 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썼지만 그들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한번은 간수가 음식이 들어 있는 소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이 안에 저를 위해 사람들이 보낸 초콜릿과 여러 가지 맛있는 것들이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비록 제 손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저를 염려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음식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어요. 또 노르웨이에서 제게 열 개나 되는 소포를 보냈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것 역시 제게 전달되지는 않았습니다…… 전 세계 여러 다른 지역의 기독교인들과 이런 영적인 교제를 경험하는 것은 정말이지 놀라운 기쁨이었습니다. 이것은 감옥 안에 있는 우리에게 큰 소망을 주었습니다. 우리를 생각하고 기도해주는 모든 분께 사랑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녀가 4번째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나왔을 때, 더 이상 그녀에게서 영화배우 같았던 젊은 시절의 미모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 겨우 삼십 대에 접어든 그녀는 마치 오십 대처럼 보였다. 오랜 수감 생활로 많이 여위고 수척해진 것이었다.

그녀를 알던 사람도 이 모습을 봤다면 그녀가 아이다라고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 한 가지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녀의 미소 말이다. 그녀의 미소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기쁨과 사랑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그녀의 마지막 감옥 생활 중에, 아이다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성경 구절 하나가 예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다가왔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11:30). 이 말씀은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고 3년의 감옥 생활 동안 이것이 진리이며 실제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1991, 그녀의 마지막이자 네 번째 수감 생활이 끝난 지 20여 년 후, 소련은 공산주의의 붕괴로 해체되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정부의 박해는 잠시나마 중단되었다. 지하에서 계속되었던, 아이다와 다른 기독교인들의 믿음과 싸움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1992년에 순교자의 소리에서 파견된 사역자가 아이다를 찾아냈다. 그녀는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 있는 허름한 건물에 있는, 깨끗하고 단정하게 정돈된 아파트에서 병들어 창백하고 야윈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그녀는 혼돈의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정결하고 조용한 섬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마음과 영혼의 상태를 잘 묘사해주는 표현이리라. 그녀에게는 자신을 고문한 자들에 대한 원통함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용서만 남아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가 세계 전역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그에 대해 너무나 고마워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계 전역에 흩어진 많은 이들의 기도 때문에 모든 고난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런 기도가 없었다면 인내하지 못했을 겁니다.”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 (히브리서 133절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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