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Of The Martyrs - Korea

Go

순교자들의 이야기

예수쟁이들 #12: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다

Posted by 기타 기고문 on with   Comments

리처드 웜브란트

루마니아

1945

 

루마니아 사제들과 목사들은 하나둘씩 공산당의 편에 서서 그들을 찬양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통치 체제에 충성을 맹세했다. 공산당과의 연합과 선전에 대한 성명이 국회의사당에서 라디오를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이 루마니아 정권을 잡은 지 일 년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의사당에서 회의를 개최하겠다며 모든 기독교계 지도자들을 소집했다. 4천 명이 넘는 교단의 목회자와 사제들이 모였고, 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을 명예의장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연설이 시작됐다. 그것은 참으로 불합리하고 끔찍했다. 공산당은 러시아에서 이미 그랬던 것처럼 루마니아에서도 종교를 파괴하는데 전념했다. 하지만 주교들과 목사들이 일어나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며 공존할 수 있다고 선언해 버렸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무서워서, 거짓말과 아첨으로 공간을 가득 채운 것이다.

이는 마치 그들이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사비나 웜브란트(Sabina Wurmbrand)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리처드, 일어나서 예수님의 얼굴에서 이 치욕을 씻어 내요!”

리처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았다. “내가 그렇게 하면 당신은 남편을 잃게 될 거요.”

그녀가 대답했다. “겁쟁이를 남편으로 두고 싶지는 않아요.”

웜브란트 목사는 연단으로 걸어나갔다. 모든 사람들이 놀란 가운데 그는 설교를 시작했다. , 침묵이 온 의사당 안을 뒤덮었다.

대표자 여러분, 우리의 의무는 잠깐 있다 사라지는 이 땅의 권력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구주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한 공산당 간부가 연단으로 뛰어올라왔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온 나라가 공산당 의회의 연단에서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것을 듣고 있었다. “당신의 발언권은 박탈되었소!” 그가 소리쳤다.

웜브란트는 그를 무시했고 설교를 계속 했다.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는 그 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말하고 싶었으나 두려워서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있었다.

간부가 큰 소리로 외쳤다. “마이크 꺼!” 참석자들은 더 크게 소리질렀다. “목사님, 목사님, 목사님!” 그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마이크가 꺼지고 웜브란트가 내려온 이후에도 오랜 동안 함성과 박수가 이어졌다. 그 날 회의는 거기서 중단되었다.

그 사건 후, 리처드 웜브란트는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혔다

1948229일 일요일, 웜브란트 목사는 교회로 가는 길에 비밀 경찰들에게 납치당했다. 나중에 그는 그때의 사건을 이렇게 진술했다.

저는 지하 10미터 정도에 만들어진 독방에 감금되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그 지하 독방에 홀로 갇혀 있었죠. 해, 달, 별 꽃을 비롯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저를 고문하고 때리는 간수들 외에는 어떤 사람도 보지 못했어요. 책이나 신문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글을 써야 하는 순간에, 저는 알파벳 대문자 D를 쓰는 법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고립감을 더욱 악화시키기 위하여 감옥은 완전히 정적에 싸여 있었습니다. 심지어 간수들은 천으로 만든 신발을 신고 있었기에, 그들의 발자국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처음 감금되었을 때, 우리는 꼭 죽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나 자신이 과거에 지은 죄들과 이행하지 못한 의무들 앞에 직면하게 됩니다. 유일하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신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 속 깊이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찾아옵니다.

저는 그러한 회환과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감방의 벽이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봤었지만 암흑뿐이었던 감옥에서 그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리라고는, 그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비롭고 사랑이 넘치는 눈길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사랑과 용서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 속에 있던 죄악들이 모두 사라지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음을 알았습니다. 놀라운 날들이었어요. 신부가 신랑의 품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습니다.

우리는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습니다. 때로는 고문을 당하고 매를 맞을 때도 마치 스데반과 같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돌을 던질 때에도, 자신의 살인범들이나 날아오는 돌이 아니라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와 동일하게 우리는 간수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감옥에 갇혔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천사들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천사들에 대해 믿는 것은 단지 성경에 써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성경 구절들을 기억해 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는 사도들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요일 1장1-2절).

몇 년 동안 독방에 수감되다가, 우리는 상당히 넓은 감방으로 옮겨졌습니다. 어떤 때에는 2~300명이 한 방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그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들려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듣기에 몹시 거북한 일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야겠습니다. 수감자들 가운데 크리스천들은 심하게 매를 맞고, 십자가에 4일 밤낮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산당 간수들이 그들을 둘러서서 조롱하며 놀렸습니다. ”너희들의 그리스도를 봐라. 너무나 아름답지 않으냐? 하늘에서부터 풍겨오는 향기가 좋지 않으냐?“ 그들은 다른 수감자들을 발로 걷어차고 억지로 무릎을 꿇게 해서 더럽힌 십자가 앞에 절하게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악몽 같은 순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세뇌 시간이었습니다. 세뇌를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어떤 고문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아침 다섯 시부터 밤 열 시까지 하루에 열일곱 시간 동안 꼼짝없이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었습니다. 기대거나 머리를 숙이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눈을 감지도 못했습니다. 하루에 열일곱 시간 동안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공산주의는 좋은 것이다, 공산주의는 좋은 것이다, 공산주의는 좋은 것이다. 기독교는 어리석다, 기독교는 어리석다, 기독교는 어리석다. 더 이상 아무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 더 이상 아무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 포기해라. 포기해라. 포기해라!” 며칠, 몇 주, 몇 년 동안 우리는 그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악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고문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불에 달궈진 쇠, 고무 곤봉, 막대기를 비롯한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심하게 고문당할 때, 우리는 고문하는 간수들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꽃을 밟을 때에도 그 꽃은 향기로 보답하는 것처럼, 우리는 더욱 심하게 조롱 당하고 고문을 당할수록, 고문하는 간수들을 더욱 불쌍히 여기고 더욱 사랑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당신은 고문하는 사람들까지 사랑할 수 있었습니까?”라고 많은 사람들이 웜브란트에게 질문할 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고문하는 그들을 당시의 모습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변하게 될 그들의 모습을 기대함으로써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다소의 사울-나중에 바울이 된-처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비밀 경찰들이 나중에 크리스천이 되었고,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기꺼이 감옥에 갇혀 고통을 당했습니다. 비록 우리는 채찍질을 당했지만, 간수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바울이 만난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같이 변화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게 될 날을 꿈꾸었습니다.

우리가 공산주의자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발견한 곳은 다름 아닌 감옥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들에 대한 책임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의 감옥 속에서 공산주의자들을 향한 선교 의식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들을 그리스도에게 이끌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천국의 문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닫혀 있지 않습니다. 구원의 빛은 그들에게 꺼져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회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회개하도록 불러내야 합니다. 오로지 사랑만이 공산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1956, 웜브란트가 석방되었을 때 그는 지하 교회에서 다시 사역을 시작했다. 1959년 그는 다시 당국에 체포되었다. 이번에는 동료 가운데 한 명이 밀고하는 바람에 잡히게 되었다. 1964년 풀려난 후, 그는 또 다시 사역을 시작했다.

1965, 친구들은 웜브란트 가족이 그 나라를 떠날 수 있도록 루마니아 정부에 보석금 만 달러를 지불해 주었다. 그들은 미국에 오기 전에 스칸디나비아와 영국을 둘러보았다.

그해 5, 리차드는 워싱턴DC에서 상원 국가 안보 소위원회 앞에서 증언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옷을 걷어올려 깊게 패인 열여덟 군데의 고문 자국을 보여주기도 했다.

1967, 웜브란트와 그의 가족은 공산 세계에 그리스도를(Jesus to the Communist World)’ 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사역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오늘날 그 단체는 순교자의 소리(The Voice of the Martyrs)’ 라는 이름으로 세계 도처에 박해 받는 교회들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1991~2, 우리는 소련 연방과 동유럽의 공산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공산주의의 붕괴와 더불어 크리스천들에 대한 박해도 끝났다. 되돌아보면 순교자의 소리(VOM)’와 같은 단체의 사역과 기도가 새로운 자유의 핵심 열쇠였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리처드와 사비나(그녀 역시 3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와 같은 크리스천들이 믿음 때문에 박해를 당하던 그 지역에 부흥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VOM은 오늘날 크리스천들을 박해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자유의 물결이 이는 것을 보기 위해 끊임없이 헌신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생활로 인해 제한되신 듯하다. 마치 누군가가 요청하지 않고서는 그분께서 인류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존 웨슬리

감리교 운동의 설립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작은() 야고보,

성전 벽에서 던져짐

주후 63

(야고보서 5:16 개역개정)

Tags: 루마니아, 예수, 리처드, 웜브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