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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실천

[듣기 요9:1-8] 맹인처럼 보는 법 배우기

Posted by Margaret Foley on with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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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91-8

오래된 조크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공원을 걸어가던 한 남자가 개 옆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만났다.

“당신의 개는 뭅니까?” 남자가 물었다

“아니오.” 그 사람은 말했다.

그래서 남자는 손을 내밀어 개를 만지려 했다.

그러자 개가 남자의 손을 물었다.

“당신의 개는 물지 않는다면서요!” 남자는 소리쳤다.

“이 개는 내 개가 아니오.” 그 사람은 대답했다.

이 조크를 들을 때 웃곤 하지만 왜 재미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즉 남자가 잘못된 질문을 했던 것이다. 그 남자가 잘못된 질문을 했기 때문에 개에게 물린 것이다. 비록 그가 맞는 대답을 들었음에도 말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경우도 이 조크의 상황과 같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께 물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이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이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만일 성경을 계속 읽어나간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이 사건 6개월 후에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하셨을 때, 그는 자신의 죽음을 말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때가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아셨고, 그래서 그는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일을 마무리하고 계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앞에 놓여 있는 사건들을 맹인처럼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신학적 질문을 하는 데 바빴을 뿐이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라고 하셨을 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과 같다“너희는 지금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구나! 이것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관한 것이 아니란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문제는 언제나 대부분 우리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쩌다 한 번 우리 자신을 넘어서 다른 생각을 할 때라곤 다른 사람을 정죄할 때뿐이다. 우리의 질문은 흔히 우리 자신에 관한 것이거나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남자가 맹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신다. 예수님은 그 남자가 날 때부터 맹인인 것이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맹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을 고쳐주고, 고칠 수 있고,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실 때, 철학적 혹은 신학적 질문들에 대해 답하시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고통받는 자를 도우신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것이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신 후,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드셨다. 진흙을 남자의 눈에 바르신 후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다. 그 남자가 연못에 가서 씻자 그의 시력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여러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맹인이 육체적인 시력을 회복한 것뿐만 아니라 영적 맹인 영적인 시력에 관한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영적으로 맹인이다. 제자들, 맹인의 이웃들, 바리새인들 모두 영적으로 맹인이다. 니고데모처럼 그들은 거듭나지 않았고 영적인 것들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만이 온전히 볼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올바른 질문을 하실 수 있으셨다‘하나님은 이 사람의 맹인 됨에 어떻게 반응하시는가?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으시고 진흙을 만드심으로 본질적이지만 묻지 못한 질문에 답하신다. 사실 예수님은 그 맹인을 회복시키기 위해 진흙이 필요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하인을 말 한마디로 회복시키지 않으셨던가. 하지만 예수님은 창세기 2장을 기억하도록 하시기 위해 진흙을 사용하셨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셔서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흙과 침으로 이 사람을 다시 재창조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 자신의 십자가 처형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심으로 반응하신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진정한 성품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셨다. 진흙처럼, 이 행동은 실제적인  동시에 상징적이다. 실로암 물에 씻는 것은 세례를 상기시키시려는 것이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영적인 시력을 얻게 된다.

세례받을 때, 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신과 세상에 대해 죽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수면 위로 올라올 때, 거듭나게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시작하신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시력을 주시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우리를 초청하신다.

하지만 영적인 시력은 점진적으로 성장해나가는 감각이다. 세례 이후 하나님을 즉각적으로 깨닫거나 영적인 현실을 완벽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감각처럼 영적인 시력이 성장하려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본문에 나오는 맹인의 경우를 통해 이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육체적인 시력을 회복하는 것은 그 맹인에게는 틀림없이 초현실적인 경험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날 때부터 맹인이었다. 그의 세계는 주로 소리, 냄새, 질감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그에게 찾아왔다. 그는 아이와 같이 이 세상의 다양한 물체들을 구별하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그는 어느 소리, 냄새, 그리고 질감이 어느 형태와 연관되어 있는지 배워야 할 것이다.

이것은 그의 영적 시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그에게 어떻게 해서 눈을 뜨게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 사람은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라고 대답했다. 이 후, 그 사람이 바리새인들 앞에 왔을 때, 그는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불렀다. 마침내, 예수님을 직접 뵈었을 때는 예수님이 “인자이심을 고백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경배했다. 그의 영적 감각이 그 짧은 순간에도 성장하게 된 것이다.

그 맹인은 이 본문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것은 그가 맹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는 자신이 맹인이라는 것을 인정한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중 그 누구보다도 그 맹인으로 더 잘 보게 만든다. 왜냐하면 우리들 딴에는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맹인은 기꺼이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으려 했다. 그는 기꺼이 자신의 눈에 진흙이 발라지게 했고, 기꺼이 실로암 못에서 씻기 위해 보냄받고자 했다. 이로 인해 그의 시력이- -육체적인 시력뿐 아니라--치유된 것이다.

영적 성장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우리는 잘못된 질문을 멈추어야만 한다! 이는 질문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한 조크에 나오는 남자 또는 이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우리는 해가 되는 것을 막지 못하는 무의미하고 가치 없는 질문들을 던지는 일이 많다. 어쨌든, 이 남자의 죄나 그의 부모의 죄 때문인지 아닌지는 이 남자의 상황을 조금도 도와주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는 올바르게 질문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보고, 듣고, 기도해야만 한다.

다른 사람을 정죄할 만한 이유가 없고, 특히 우리의 영적인 맹인 됨을 인정할 때 말이다. 도리어, 우리는 침묵함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행동해야 한다: 즉 그리스도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점점 우리의 눈이 열려 보게 될 것이다.

Tags: 세례, 예수님, 요한복음9장, 맹인, 시력, 영적인 시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