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Of The Martyrs - Korea

Go

말씀과 실천

[듣기 요7:37-39] 초막절이란 무엇인가?

Posted by Margaret Foley on with   Comments

순교자의 소리의 다른 영상들을 보기 원하시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요한복음7장37-39

본문 말씀은 세 구절밖에 되지 않지만 히브리 문화를 전혀 또는 거의 모르는 현대인들에게는 굉장히 혼란을 줄 수 있는 말씀이다. 이는 요한복음 737-39절의 사건이 우리와 다른 시간, 다른 문화, 다른 언어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성경을 읽을 때 항상 묻는 여섯 가지 질문 중 두 번째인 '문맥'에 관한 것이다. 문맥에 관한 질문, 즉 장소, 사람, 이유, 절기 같은 것들은 성경을 읽을 때 바로 깨달을 수 없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문맥에 관한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학위 또는 고가의 신학책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진정 필요한 것은 성경, 기도, 그리고 배우고자 하는 의지이다.

문맥에 대해 알고자 하면, 그 본문의 전후 구절들을 읽어봐야 한다. 더 많이 읽을수록,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한 예로 요한복음 7 37-39절을 살펴보자. 요한복음7장 전체를 읽는다면, 본문의 상황을 알 수 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요한복음7장1-3절).

예수님은 지금 초막절 마지막 날에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러나 이 정보가 왜 중요할까? 분명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청중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이 절기 사이의 어떤 관련성을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후 즉시, 사람들은 그분이 메시아인지 아닌지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초막절이란 무엇인가?

성경을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은 개인 예배 시간에성경 레퍼토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성경을 읽어나간다면, 쉽게 지나쳐 버린 성경말씀 구절 사이의 연계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방법을 적용한다면, 레위기 23장33-43절이 초막절(Sukkot)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을 알게 된다. 본문과 관련된 다른 말씀을 발견하게 될 때는 꼭 그 구절을 찾아봐야 한다. 대개 그 구절은 본문에 대한 다른 측면을 조명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레위기 23장을 통해, 우리는 초막절이 유대인들이 과거를 돌아보고 조상들의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는 즐거운 축제 행사임을 알게 된다.

초막절 기간 동안, 사람들은 임시초막(Sukkah)을 짓고 그곳에서 산다. 그곳에서 먹고, 자고, 그 안에서 생활한다. 매일 아침, 그들은 물을 긷는 의식(Water-Drawing Ceremony), 혹은 심핫 베잇 하쇼에바에(Simchat Beit Hashoeivah)에 참여하기 위해 성전으로 향한다.

매일 아침, 실로암 못에서 길러온 물을 성전으로 가져왔다. 제사장은 이 물을 제단 위에 붓고, 사람들은 기쁘게 시편118장25-26절을 외쳤다. 예수님이 무리에게 말씀하기 위해 섰을 때, 이 의식은 이미 일곱 번이나 반복되었던 때였다. 유대인들은 시편을 외쳤고, 임시초막에서 살았으며, 칠 일 동안 메시아를 머리에 떠올렸을 것이다.

그들이 메시아를 생각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시편11825-26, 이스라엘 사람들이 매일 아침 큰소리로 외친 구절에는 메시아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이것은 초막절이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다시는 임시초막에서 살지 않아도 되는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그때 그들은 이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줄 메시아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때 예수님이 일어서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한복음7장37-38절).

이것을 읽는 우리 현대인들은 아마 혼란스러울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이 성령(요한복음 7장 39절)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어떻게 정확히 이해했는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 생수에 관한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자신이 메시아라고 하는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인가?

구약을 보면, ‘하나님의 영이 물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성경 구절들을 발견하게 된다. 한 예로, 이사야 44장3절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라고 말한다. 또한 스가랴서 14 7-9절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스가랴 14장7-9절).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생수에 대해 언급하시는 것을 들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 곧 메시아시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예수님의 주장에 대해 진실 여부를 논쟁하기 시작한 이유이다.

예수님은 놀라운 선물을 주고 계시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그 선물이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통해서만 주어진다는 것을 안다. 이 선물은 바로 성령이다.

당신에게 한 가지 질문해보자. 만일 육체적으로 존재하시는 예수님과 당신 안에 사시는 성령님 중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직관적인 대답은 예수님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확언하신다.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한복음16장7절).

예수님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이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육체적으로 계시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고 말씀하신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성령님은 매우 특별한 분임이 틀림없다.

성경은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그분의 집을 만드신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16장13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예수님처럼, 성령님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으신다. 성령님은 오직 성부와 성자가 말씀하는 것만 말씀하신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니케아 신경은[성령은]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시어라고 말한다. 성령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게 된다.

매주일 교회에 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한 성경 공부에 참여하거나 그리스도인 선생들의 가르침을 듣는 일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멋진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께 직접 배우는 것이다. 성경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친다고 말씀하신다. 성령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고, 성경의 저자들을 감동시키셨다. 성령님 없이는 결코 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신다. 그는 큰 고난과 박해를 경험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기쁨과 사랑으로 충만해질 수 있는 이유이시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도우신다. 성령님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 가장 잘못 이해되는 분이시지만, 그는 매우 중요한 분이시다. 성령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분은 추상적인 원리가 아니시다. 우리 존재의 모든 측면에 개입되어 있다. 심지어 성령님은 우리 안에 살고 계신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그분을 믿는 모든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믿음을 소유한 자’(who has faith)가 아니라믿는 자’(who believes)라고 하신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믿는다는 것은 동사이지 명사가 아니다. 믿는다는 것은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탄도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것을 안다. 이것이 사탄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가? 물론 아니다. 믿는다는 것은 아는 것 이상이다.

믿는다는 것은 (1)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2)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하게 들리는가? 비유를 들어 생각해보자. 나는 현미가 백미보다 더 건강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현미가 건강한 수면 패턴, 체중 감소 및 에너지 수준을 어떻게 지지하는지에 대한 여러 보고서를 읽었다. 하지만 이것을 알고도 백미만 먹는다면, 내가 안다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마태복음 7장24-27절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이와 매우 유사하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수동적으로 알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믿으라고 요구하신다. 어쩌면 목마른 자들에게 다가가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목마른 자는 나에게 나아오라고 부르신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Tags: 믿다, 믿음, 삼위일체, 성령, 성령강림절, 신앙, 예수님, 장막절, 초막절,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