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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요3:1-17]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Posted by Margaret Foley on with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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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장 1-17절

우리는 흔히 요한복음 31-15절을 사탕 껍질처럼 다룬다. 요한복음 316절과 17절이 사탕이고 다른 구절들은 사탕 껍질인 것이다: 우리는 사탕만 먹고 껍질은 버린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요한복음 316절을 알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니케아신경조차도 예수님이 만세 전에 아버지로부터 나신 분이라고 말하며 이 말씀을 인용한다.

하지만 요한복음316, 17절만 따로 읽으면 해답보다는 의문이 더 많아진다. 예를 들어, 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을 강조해야 하는가? 누가 그 사실을 반대하겠는가? 그리고 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해야 하는가? 문맥을 따라 요한복음 2장부터 본문 전체를 읽으면 이런 질문들에 대해 답할 수 있다

요한복음 2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유월절 기간 중에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성전은 소, , 그리고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로 붐빈다. 다른 사람들은 외화를 지역 화폐로 바꿔주고 있다. 요한복음2장15은 예수님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하신 것을 말해준다.

이 일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대면한다.

그들은 묻는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보이겠느냐?”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경악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이 성전 건축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설명한다. 예수님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님은 유대 사람들에게 너희가 내 몸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성전에서 상인들을 (채찍으로) 내쫓고, 책상을 뒤집어엎고, 성전을 무너뜨리면 자신이 3일 안에 다시 세울 것이라고 우김으로써 신성 모독을 한 난폭한 사람이었다.

그들의 시선에서는 인자가 난폭했다. 그는 사람들을 실제로 증오하고 심판하는 데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요한복음316절은 이와 정확히 반대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시각, 전통, 그리고 이성에 근거한 우리의 지식이 우리를 완전히 속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요한복음31-17절은 사랑의 하나님과 인류를 구속하러 오신 그의 아들에 관한 내용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이것은 지식, 즉 인간의 지식의 한계와 그 한계를 어떻게 넘을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소동을 벌이신 뒤, 바리새인인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에게 왔다. 바리새인으로서 니고데모는 매우 중요하고 권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낮췄다.

니고데모는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며 그를 나무라셨다.

언뜻 보기에 이 대답은 핵심에서 벗어나 보인다. 어찌 됐든 니고데모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행동 뒤에 계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예수님의 대답은 니고데모의 말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자신이 ‘안다’는 주장에 반응하고 계시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야, 네가 내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타락한 창조물로 태어났다. 우리는 타락했고 우리의 눈은 진리로부터 어두워져 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과 싸우기 위해 우리는 이성 또는 사고력으로 진리를 찾는다. 이성은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성도 타락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합리화하고자 하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우리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성경 전체를 읽는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겐 적절한 능력이 부족하다. 이성 또는 사고력은 재능이지만 우리의 이해의 간극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만약 우리가 니고데모와 같이 제가 성경 전 권을 다 읽고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라고 예수님께 말씀드렸다면 예수님은 마찬가지로 우리도 나무라실 것이다!

예수님의 논점을 인정하듯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책망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사옵나이까라고 니고데모는 묻는다.

그러나 창조 속에서 태어난 모든 것이 타락했다면 어머니의 모태 또한 타락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의 이해를 바로잡으셔야 한다. 그분은 이 새로운 탄생이 모태가 아닌 물과 성령을 통해 일어나야 한다고 설명하신다. 물과 성령은 창세기 1장을 돌아보게 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모든 것이 물과 영으로부터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은 죄로 넘어졌고 모든 창조물을 같이 끌고 내려갔다. 모든 창조물이 그 순간부터 탄식하며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그 뒤 회복자이신 그리스도가 오셨다.

그분은 어떻게 회복시키시는가? 물과 성령, 즉 만물이 창조된 재료를 통해서이다.

예수님의 세례에 대해 배운 내용을 기억하는가?

많은 죄인들이 요한에게로 나아와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했다.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셨다.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자 예수님은 요한에게 다가가 세례를 요청했다. 요한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왜 내게 세례를 베풀어달라고 하십니까?”라고 요한은 말했다.

 “요한, 내게 세례를 베풀어라. 나의 세례는 모든 의를 이루는 과정 속에서 중요한 절차이다.”라고 예수님은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물 속으로 내려가셨다. 물에서 올라오실 때 우리는 물과 영을 이 말씀에서 두 번째로 보게 되는데 성령님이 그리스도 위에 임하신다. 이 상황에서 성령은 모든 만물 위에 운행하시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위에서 운행하신다. 이것은 중요한 차이이다: 창조의 속량이 그리스도 자신으로부터 일어난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만이 천국으로부터 내려와 천국을 알기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니고데모에게 설명하신 뒤,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하시며 구약의 한 이야기를 언급하신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지나려고 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엉뚱한 길로 인도하셨다. 불만에 가득 차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들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라고 외쳤다.

그들이 불평하자 하나님은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셨다. 불뱀들이 불평한 많은 이들을 물어 죽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나아와 자신들이 범죄했다고 시인했다. 그들은 모세에게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하며 애원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불뱀들을 거두지 않으셨다.

대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정확히 요한복음 31-17절이 말하는 바이다. 세상은 완전히 타락했고, 다시 말해 심하게 뱀에 물려, 우리의 본능으로 세상을 성공적으로 (심지어 종교적으로) 탐색하는 것은 틀림없이 우리를 죽게 만든다는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거둬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죄의 뱀들보다 더 심한 것이다. 우리에게, 또는 우리 안에 무언가가 일어나야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 그 무언가가 거듭남이고 물과 성령을 통한 세례인 것이다. 이 길만이 하나님을 알고 그분께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다.

그 이하는 우리를 밤중에 허둥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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