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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요14:15-21] 왜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처럼 보일까?

Posted by Margaret Foley on with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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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4장15-21

당신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를 떠올려 보라.

아마도, 당신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과 생일 그리고 성격까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 사람의 기분, 혹은 묻지 않고도 그 사람의 생각을 알지 모른다. 그 사람의 소망, 꿈 그리고 때로는 그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들까지도 알 수도 있다.

바로 그 사람을 생각해 보라.

, 이제는 당신이 왜 그렇게 그 사람을 잘 아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아마도 분명히, 당신은 그 사람과 많은 시간을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웃고, 함께 격분하고, 함께 울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통해 각각 서로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와 매우 비슷하다.

만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원한다면, 제일 먼저 그분에게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성경을 읽을 때,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늘 아버지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과 관계 맺기를 시작하기에, 요한복음 1415-21절보다 더 좋은 말씀이 있을까? 이 본문은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한 예로,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혜사(성령)를 보낼 것이며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라고 언급하신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언제나 존재하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

요한복음 1417절에서 예수님은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 하셨고, 그 뜻은 하나님은 진리라는 것이다. 사람은 기껏해야 대부분 진실한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진실되기 위해 전적으로 노력할지라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기만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히 진실이시고, 그분 안에는 기만이 없다. 진리는 하나님의 성품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또한 요한복음 1417절은 하나님은 알 수 있는 분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한복음14장17절). 하나님은 온 창조의 주권자시며, 존재 이상의 독립된 존재이시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을 알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은 한 국가의 지도자나 심지어 한 도시의 시장도 잘 알 수 없고 만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영원하고, 진실되며, 알 수 있는 분이시지만, 그분은 훨씬 그 이상이시다!

예수님이 요한복음1415절에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즉각적으로 쉐마를 떠올렸을 것이다. 쉐마란 신명기 6장4-9절 말씀으로 구성된 중요한 기도문으로, 유대인들이 꼭 해야만 하며 유대인의 신앙에 대한 필수적인 선언이기도 하다. 고대에는, 유대인들이 일몰에 한 번, 일출에 한 번씩 이 기도문을 암송해야 했기 때문에 제자들은 쉐마를 자신의 손보다 더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쉐마와 연결시켰을까? 쉐마는 이런 말씀으로 시작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명기 6장4절). 주님은 한 분이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상기시키신다. 그러고는 하나님의 세 위격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계시하신다.

성 삼위일체시다.

이 개념은 아주 간결하면서도 매우 복잡하나, 12세기의 형제 자매들은 온전히 잘 알았던 주제이다.

이 도표를 삼위일체의 방패’(the Shield of the Trinity)라고 한다. 이 도표는 삼위일체를 시각적으로 알 수 있게 하기 위해 12세기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만든 것으로, 하나님의 본질을 나타낸다. 이 도표를  통해 볼 수 있듯이, 성부, 성자, 성령은 한 본체이시나, 합쳐지거나 대체될 수는 없다(성부는 성자가 아니시며, 성자는 성부가 아니시다, ).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삼위일체에 대한 비유로 적절하지 않은 예를 살펴봄으로써 삼위일체를 설명하려고 한다.

다음 내용은 삼위일체를 잘못 설명하는 것이다:

  • 세 형태의 한 하나님 :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많은 기독교인들은 물, 얼음 그리고 증기 비유를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비유이다. 증기가 식거나 얼음이 가열되면, 물이 된다. 하지만 성부, 성자, 성령은 결코 형태를 바꾸지 않으신다. 더욱이 서로 다른 상태의 물은 서로 간의 관계 안에 존재하지 않으며, 단순히 하나의 형태의 다른 상태일 뿐이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 아니시다.
  • 서열이 있는 하나님 : 현대 이단들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개념으로,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보다 더 뛰어나시거나, 혹은 성령은 결코 위격이 아니시라는 개념이다. 지난 블로그에서 나눴던 대로, 성부, 성자, 성령은 동등한 위격이실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서로를 섬기고 계신다.
  • 구별된 삼() :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세 위격으로 계시는 한 하나님을 믿었다. 구약과 신약 전반에서 이 사실의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역사를 통틀어 교회가 만든 신경들 속에서도 찾아볼 수도 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성부, 성자, 성령의 관한 언급으로 가득하다. 한 예로, 16절에서, 우리는 삼위일체의 세 분을 모두 볼 수 있다. 성자는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거하시기를 성부께 간구한다. 그 후, 21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음으로 성부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성령은 이런 명령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요한복음 14장26절).

요한복음 14장 후반부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정확하게 수행한다고 말씀하신다. 머리를 쥐어짜도 이것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예수님은 어째서 아무 분별없이 아버지를 따르는 것일까? 예수님은 우리와는 달리 진실된또는 독립적인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으시고, 대신 자신의 아버지를 따르는 것만 생각하신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최선의 유익을 생각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은 모두 완전하시고, 경배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시다. 하지만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 지배하는 것은 볼 수 없으며, 서로 섬기고 따르며 서로에게 영광을 돌리고 돌보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얼마나 어려운 사랑의 형태인가! 이런 사랑은 희생과 헌신을 요구한다. 영광을 포기하고 다른 이들이 옳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셨지만, 단 한 번도 그것으로 인해 칭찬이나 영광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단순하게 아버지의 말씀에 계속 귀 기울이셨고,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높이셨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알기 원한다면,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당신의 말은 듣기 싫어요.”라고 고집을 피워서는 안 된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남편이 수개월 동안 아내를 완전히 무시하자,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아내는 남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남편이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당신의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고 하자. 남편은 정말 아내를 사랑하는 것인가? 혹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렇지 않은가? 사랑이라는 느낌은 진짜 사랑이 아니다.

우리가 호의를 얻기 위해 행동할 수는 없지만, 만일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어떤 특정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들에 관한 작은 것 하나까지도 모두 배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 수 있는 사소한 것까지도 모두 배워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할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23절에서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건물 안에 계시지 않으신다. 자신의 교회인, 우리 안에 살기로 하셨고,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할 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거하실 것이다. 창조주께서 창조함을 받은 피조물에게 오셔서 거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아는 그 이상으로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Tags: 관계, 예수님, 하나님, 성령님, 삼위일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