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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실천

[듣기 요14:1-14]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인가?

Posted by Margaret Foley on with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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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1-14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경적으로도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141-14절을 포함하여 요한복음 전반에 걸쳐 이것을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요한복음 14장1-4절).

이 본문은 근심에 사로잡힌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답하시는 중간에 시작되고 있으므로 더 넓게 문맥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 이 대화는 언제 일어났는가? 예수님과 사도들은 어디에 있는가? 제자들에게 무엇이 문제인가?

13장을 읽어보면, 이 대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다락방에서 오고 간 것을 알 수 있다. 제자들의 발을 막 씻기신 예수님은 떡을 떼시며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며 매우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셨다. (요한복음 13장21절)

제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베드로가 부추기자, 어떤 제자가 배반할 것인지를 요한이 물었다.

예수님은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라고 하셨다(요한복음 13장26절). 그 후 곧 떡 한 조각을 적셔 유다에게 주셨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라고 하셨다(요한복음 1327).

유다는 떡을 받은 후 곧 나가버렸다. 남아있는 제자들은 방금 일어난 일로 인해 어리둥절했다. 유다는 유월절 준비를 하러 나간 것인가? 아니면 그가 설마 변절자? 예수님과 제자들을 모두 원수의 손에 넘겨주려고 밖으로 나간 것인가?

그러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말을 예수님이 발표하셨다.

그 날 밤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거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베드로는 예수님이 반석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제자들의 대변인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반석이 흔들리고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유다는 저녁식사 중간에 그 자리를 떠났다. 베드로도 보아하니 머지않아 그 뒤를 좇을 것 같다. 당연히, 제자들은 혼란스러웠고,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을 것이다. 만일 제자들이 예수님과 영원히 분리되면 어찌되는 것인가?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간혹 이 본문을 읽을 때, 우리는 예수님이 시간을 초월한 먼 미래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으로 잘못 추정한다. 마치, ‘우리가 죽은 후에 갈 하늘에 있는 장소를 준비하시려는구나.’라고 말이다.

나사로의 죽음 이후, 마르다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한복음 11장21절). 예수님이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확언하셨을 때,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말했다(요한복음 11장24절).

우리처럼 마르다도 예수님이 먼 미래에 대해 약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그 날 바로 부활시키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거처를 예비한다고 하셨을 때, 그분은 그들의 현 상황을 말씀하신 것이며, 마찬가지로 우리의 현재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를 위해 거처를 마련하러 어디로 가신 것인가?

십자가로 향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분의 몸은 오늘날 우리가 살 수 있는 많은 거처, 즉 많은 방들이 있는 곳이 되신 것이다. 부활절 사건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살 곳을 마련하시는 방법이었다. 우리가 거할 이 장소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언제 그곳으로 가게 되는가? 다른 사람 안에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요한복음 8장21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에게 맞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라고 하셨다. 바리새인들은 혼란스러웠다. 그들은 갈 수 없지만, 예수님은 가시고자 하는 곳은 어디인가? 자신을 죽이겠다는 것인가?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한복음 8장23-24절).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은 오직 두 곳뿐이다. 우리의 죄 가운데서 살거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사는 것이다. 죽음도 이것을 바꾸지 못한다. 우리가 어디에 살든지, 그곳이 우리가 죽을 곳이고 우리가 죽어서도 머물게 될 곳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요한복음 전반에 걸쳐 반복하시는 말씀이지만, 무리들 심지어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 또는 우리가 실제적인세상을 항상 물질 세계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예로, 요한복음 213-22절에서, 예수님은 채찍으로 돈 바꾸는 사람들을 성전 밖으로 쫓아버리셨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항의했다.

그들은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라고 물었다. 즉 무슨 권위로 이 사람들을 성전에서 쫓아내느냐는 말이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한복음 2장19절).

유대인들은 당연히 혼란스러웠다. 그들은 46년 동안 성전을 짓고 있었고, 성전은 아직도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흘 만에 이 성전을 다시 짓겠다는 것인가? 이에 대해 요한은 예수님이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바로 설명한다(요한복음 2장21절).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성전이라고 하셨다. 성전은 우리가 살고 예배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때라는 것은 아주 먼 미래가 아니다. 사실, 그때는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여기이다.

그녀는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했다(요한복음4장19-20절).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장21-24절).

예수님은 오늘날 사람들이 어디서 살고, 어디서 예배하는지를 말씀하고 계신다. 즉 그들의 죄 가운데서 사느냐 혹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사느냐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은 실제적인 장소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곳은 우리 삶에서 가장 구체적인 장소인 물리적 장소보다 더 실제적이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더 자세히 장소들에 관해 말씀하신다. 계속 읽어보면, 제자들이 우리처럼 다른 사람 안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놓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15장에서 다른 이미지(집 대신 포도나무)를 들어 말씀하시지만 똑같은 진리를 설명하시는 것이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한복음15장4-6절)

우리는 물질 세계를 실제세계로, 영적 세계를 희미하고 동떨어져 있는 세계로 잘못 인지한다. 그러난 실제로 진실은 그 반대이다. 우리가 실제세계라고 부르는 것은 영적 세계의 그림이다. 물질 세계도 물론 실제적이지만, 영적 세계에 달려있다. 이 말은, 물질 세계는 그 형태와 존속을 위해 영적 세계를 의존한다는 것이다. 현재 물질 세계는 죄로 인해 왜곡되어 있지만(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뜻이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라며 기도한다),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순간순간 유지되고 있다.

도움이 될 만한 실례를 들어보자. 우리 집에는 아마 가족사진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사진은 실제 가족이 아닌 부수적인 것이며, 그 사진은 실제 가족이 있지 않는 한 존재할 수 없다. 한 예로, 어머니는 사진 그 이상이다. 만일 누군가가 우리 어머니랑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하면서 저녁 내내 어머니의 사진만을 쳐다보고 있다면, 우리는 매우 당황해 할 것이다. “집에 가서 어머니를 뵙는 게 어때요?”라고 제안하지 않겠는가.

물질 세계를 실제세계로 간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물질 세계는 영적 세계의 사진과 같다. 단지 영적 세계의 뒤틀리고 일그러진 모습이다. 물론, 많은 아름다움(그리고 하나님께 큰 가치가 있다)을 지니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의 육신보다 더욱 실제적이다. 성경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산다고 말할 때, 이것은 그저 비유가 아니라 실제이다. 우리가 사는 가장 실제적인 곳이거나, 살고 있지 않은 곳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언제 살게 되는가? 우리가 믿고 세례를 받을 때이다. 이 때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안에 속하게 된다. 가지인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그분께 붙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 안에 살고, 죽음이 이를 바꾸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한 이유이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장38-39절).

당신은 어디에서 살 것인가?

당신은 당신의 죄 가운데서 계속 살 것인가? 인간은 죽을 때 자기 위치를 바꿀 수 없다. 우리가 죽을 때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다. 만일 우리의 죄 가운데서 살기로 선택하면, 우리는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그리스도 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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