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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요한복음 11:17-27]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호흡의 차이

Posted by Margaret Foley on with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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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117-27

처음에는 요한복음 11장이 설명이 굳이 필요없는 간단한 말씀처럼 보인다: 쉽게 말하면 ‘오래된 사랑하는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예수님이 그 죽은 자를 살리신 기적 이야기이다. 이 본문에 혼란스러운 요소가 있는가?

마리아와 마르다가 사람을 보내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전했을 때 예수님은 곧바로 가시지 않고 이틀이나 지나서 그들을 방문하셨다. 왜 그러셨는가? 본문 5절은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지체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을 사랑하셨다면 왜 굳이 이틀을 더 기다리셨는가? 오히려 그 즉시 가셔야 했던 것 아닌가?

그 이후, 요한복음 1133절에 보면, 예수님은 마리아와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는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예수님은 왜 비통하게 여기셨는가? 사람들은 예수님이 나사로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사로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음에서 살아날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무덤에 다가갔을 때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다. 왜 우신 것인가?

또 보면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도착하셨을 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일반적으로 이 단어들은 요한복음에서 각각의 의미가 있고 예수님은 자신을 반복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부활과 생명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자 마르다는 말리려 했는데, 이는 무덤을 열면 끔찍한 냄새가 날까봐 염려해서였다. 그러나 같은 장에서, 마르다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었다. 이 믿음을 고려할 때, 그런 큰 믿음을 보인 마르다가 왜 예수님을 의심하는 것인가?

이렇게 되니 이 이야기가 더 복잡해 보이는 것 같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이 나사로를 사랑했고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사실은 알지만, 왜 그렇게 하셨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네 개의 다른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그리고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의 문맥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나사로의 부활은 실제로 기적 이상의 것, 즉 표적이다. 기적과 표적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기적은 그 사건만을 주목하지만, 표적은 그 사건 이상의 것 그리고 그 사건보다 더 깊은 것을 주목하도록 한다.

요한복음에는 7개의 표적이 등장한다.

                  [요한복음21-11]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가 되게 하심

                  [요한복음4장43-54절] 예수님이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리심

                  [요한복음51-14]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

                  [요한복음61-14]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이심

                  [요한복음616-21]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심

                  [요한복음91-12] 예수님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심

일곱 번째 표적이 바로 나사로의 부활이다. 이 표적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암시한다. 이 본문의 여러 구절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에도 등장한다. 한 예로,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부활절 아침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라고 한 말씀을 반향한다.

게다가, 나사로의 이야기는 요한복음의 바로 중간에 등장한다. 요한복음의 중심은 27절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일 것이다. 이것은 요한복음 1125-26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을 때 보인 마르다의 반응이다.

당신은 이것을 믿는가? 당신은 마르다처럼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언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이상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그들의 맹인 됨으로 인해 이렇게 반응하지 못했다.

요한복음에서 맹인 됨은 가장 흔한 주제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이 진리인 양 말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잘못되었다. 한 예로, 니고데모는 자신과 이스라엘의 다른 선생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예수님께 말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를 질책하시며 본질적인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3).

제자들이 나사로에 대해 예수님께 말씀드렸을 때 이는 자신들이 맹인임을 나타낼 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그러나 제자들은 마치 코미디하듯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제자들은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라고 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을 설명하셔야 했다. 그때까지도 제자들은 혼란스러웠다. 그들은 최근에도 유대에서 예수님이 돌에 맞아 죽을 뻔하셨다고 언급했다. 예수님은 왜 다시 유대로 가시려는 것인가? 다시 돌에 맞기를 바라기라도 하시는 것인가? 도마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며 다짐하기까지 한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만 귀가 먹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도 귀가 먹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죽어야 할 때 그리스도를 떠나게 될 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 또한 눈먼 자들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가기 전에 더 지체하시기로 했다는 사실에 사뭇 당황해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요구할 때 즉시 행동에 옮기는 것이 사랑이 아님을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은 사람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창조하셨고, 계속 공급하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고 그 질병을 치유하는 법을 아신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기다리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기다리라고 하시면 예수님은 기다리신다.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라는 것을 아셨다.

영광은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단어이다.

영광을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눈을 감고 몸을 앞뒤로 흔들고 손을 위로 뻗으며 드리는 현대적 예배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영광이 아니다. 영광은 죽음을 통해서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신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써 죽음을 이기셨다고 말한다.

영광은 예배 시간이 아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신에 대해 죽음으로써 그리스도를 세상에 비출 때, 우리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자들을 그분의 이름으로 보살필 때, 우리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우리의 양식을 내어줄 때, 예수님 보기를 갈망하여 감옥에 갇힌 자들을 방문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창조하신 그 한 가지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께 나사로가 장사된 지 4일 후에 마리아와 마르다를 방문하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그대로 행하셨다.

예수님은 4일째 되는 날 도착하셨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육신이 죽은 지 3일이 지나면 영이 떠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4일째 되는 날은 아무 소망이 없는 날인 것이다. 예수님이 만약 3일째에 오셨다면, 나사로의 영은 아직 그의 몸에 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소생할 것이라는 기적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한 회복도 불가능한 4일째 날에 도착하셨다.

마르다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만약에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겁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즉각적인 질문에 답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마르다가 생각지도 못한 더 깊은 질문에 답하셨다.

“내가 곧 부활이요 생명이다.

“부활과 “생명, 이 단어들은 같은 것이 아닌가? 사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생명이라고 할 때, 우리는 창세기 2장7절(“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혹은 에스겔37장9-10절(하나님께서 에스겔로 하여금 생기를 향해 대언케 하여 마른 뼈에 들어가게 한 것)을 생각한다. 생명은 호흡을 하는 능력이다. 호흡하지 못하면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이라고 할 때, 실제로 우리는 “호흡을 의미한다.

예수님께로 나아온 우리 대부분은 영원한 호흡을 찾고 있다. 로마 백부장은 예수님께 자신의 하인의 호흡을 회복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께 나사로의 호흡을 회복해달라고 간청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대부분 우리는 호흡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때 예수님을 찾는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생명이라고 하실 때는 “호흡 이상을 의미하신 것이다.

맹인이 눈을 뜬 사건이 시력이 회복되어 보는 것 이상의 것(영적인 시력)을 가리킨 것과  5,000명을 먹인 사건이 떡 이상의 것(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을 가리킨 것처럼, 나사로의 죽음은 “호흡 그 이상의 것을 가리키기 위함이다. 그 이상의 것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예수님에게 “생명은 언제나 그분의 삶,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삶을 의미했다. 신성한 삶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숨을 쉬고 있는 사람들을 죽은 자들이라고 지칭하신 이유이다. 비록 그들에게 호흡이 있어도 생명은 없었고, 생명이 없으니 죽은 자들과 마찬가지였다. 이것의 증거는 우리가 죽을 때, 우리가 호흡을 멈출 때 분명해질 것이다. 만일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죽어도 살 것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이 나사로의 호흡이 끊어져서 우는 것이라고 잘못 믿었다.

“예수님이 얼마나 나사로를 사랑하시는지를 봐!” 사람들이 외쳤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배운 대로,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잘못된 판단을 한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호흡이 끊어져서 눈물을 흘리신 것이 아니라, 마리아와 울고 있는 무리들의 영적인 맹인 됨을 보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똑같이 예수님께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마르다는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고백을 한다. 반면에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 뵌 후에도 계속 슬퍼한다.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분이 함께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눈물로 죽음을 경배하려 했다. 이러한 현실을 보신 예수님은 “심령에 비통히 여기셨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던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앞서 언급한 처음 3개의 질문에 답했다. 네 번째 답변은 무엇인가? 앞서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고백했던 마르다가 왜 예수님을 의심하는 것인가? 이러한 패턴은 베드로에게서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지만 그러고 나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멀어지게 하려 했다---이러한 고백과 의심은 모두 같은 성경 장에 기록되어 있다. 왜 고백과 의심이 반복되는 것일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기 전까지, 우리는 언제나 맹인이다. 때때로 영적인 시야의 찰나의 번뜩임을 얻을 수는 있으나, 그것들은 대게 재빨리 사라진다. 심지어 세례받은 이후에도 영적인 시야가 좋아지려면 시간이 걸린다. 난주에 배운 내용대로, 우리의 세상이 실제 어떠한지를 보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분의 소리에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세례시 물 밖으로 나올 때, 우리는 새 호흡이 아닌 새 생명으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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