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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마28:16-20] 지상대명령인가? 위대한 주장인가?

Posted by Margaret Foley on with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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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8장16-20

 

본문 말씀은 성경 전반에 걸쳐 가장 기념비적이고 논란이 되는 구절 중 하나이다. 예수님이 주장하시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이 본문을지상대명령이라 한다. 이는 성경을 읽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명령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태복음2819).

물론, 이 명령은 중요하다. 내가 한국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본문의 요점이라고 보는 지상대명령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상당히 현대적인 오해이다. 교회 역사 1800년 동안, 아무도 이 제목으로 이 본문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줄곧 살펴보았듯이 성경은 윤리의 계시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 성품의 계시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을 때, 제일 먼저 우리에게 주의를 돌리기 전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이 본문에서 그리스도이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경탄할 만한 주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주장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태복음 2818).

예수님이 사용하신 단어, 모든에 주목하라.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신다. 예수님은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권세혹은더 많은 영향력을 주장하지 않으셨다. ‘미래에 나는 모든 권세를 가질 것이다.’라고도 말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모든 권세가 현재 그의 손에 달려있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이 당신의 교회를 책임지신 것처럼 북한도 책임지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지 않은가!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고 있지 않은가! 집 없는 고아들이 밤새 얼어 죽고 있지 않은가! 어떤 신이 그들을 바로 잡을 만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도 이런 잔혹한 일들을 용인한단 말인가?”

이러한 질문은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경에서(요한계시록 6장10절, 하박국 1장2절, 시편13장1절) 몇번이고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고 이를 하나님께서는 격려하시기 때문이다. “주님 어찌하여 불의가 번성하게 하십니까? 왜 세상을 심판하고 바로잡지 않으십니까?”

이 저자들 중 그 누구도 하나님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이 온전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묻는다. “왜 우리를 버리십니까? 왜 복수해주지 않으십니까?”

교회 역사의 많은 부분에서 이 주장은 마태복음 2816-20절의 초점이었다. 18절이 초점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고 수감되었을 때, 두려워하기보다는 환호와 호의로 반응한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의 제목을지상대명령이라 하기보다위대한 주장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감당하기에는 무거운 주장이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돌아서며 이렇게 말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믿으며, 세상이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된 것을 믿는다. 하지만 이것만은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주장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가 모두 사해졌고,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부를 수 없다.

왜 그런가?

예수님이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앞서 있었던 신실한 교회와는 다른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고, 성경의 하나님과는 다른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성경과 교회사는 우리와 이 점에 동의한다. 예수님은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씀하신다(요한계시록 1장18절). 베드로는 하나님이 우리가 잠시 동안 고난을 겪도록 허락하신 다음 우리를 온전하고 굳건하며 강하게 해주실 것이라고 말한다(베드로전서 5장10절). 바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우리를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완벽하게 빚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불평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상기시켜 준다(로마서 9장19-21절). 초대 기독교인들은 카이사르보다 더 위대한 힘을 고백함으로써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천하를 어지럽게”)(사도행전 17장6-7절). 일본 강점기 시절,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진정한 통치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천황의 초상화에 절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이 되실 수 있는가? 초대 교회는 하나님의 이러한 성품을 어떻게 이해했기에, 핍박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었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첫 번째 일은, 하나님은 하나님을 이해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사야 55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대통령 정도로 생각한다. 우리는 그가 우리의 옳고 그름의 기준을 따라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기도할 때, 로비스트처럼 나아간다. “주님, 저는 공산주의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주님, 저는 중동의 나라들이 모두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주님, 제가 좋아하는 후보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것은 아마 우리의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혼란에 빠진 이유는 우리 자신의 부패한옳고 그름의 잣대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지만 고통을 허락하시기도 한다. 고통은 자유 의지의 부산물이다. 호흡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세상에 치유를 가져다주거나 고통을 연장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져 있다. 우리는 종종 후자를 선택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허락하신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가장 악랄한 행동마저도 그분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이 어느 한 날에 모든 것을 끝내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의 질문은 하나님이 왜 이것을 하지 않으시는지에 대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6장10절에서 성도들은 이렇게 외친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궁극적인 권세를 갖고 있다면, 왜 세상을 끝내고 약속하신 심판에 따라 다스림으로써 고난을 끝내는 선택을 하지 않으시는가?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진 자녀를 둔 모든 기독교 가정들은 이것에 대해 대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구원해야 할 사람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신다는 말은 평범한 문구가 되어버렸다. 예수님은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까지 찾아다니는 선한 목자이시다(누가복음 15장1-7절). 예수님은 잃어버린 동전을 찾을 때까지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여자와 같으시다(누가복음15장8-10절). 예수님은 자신을 홀대한 아들을 뛰어나가 안아주는 그런 아버지이시다(누가복음 15장11-24절). 또한 예수님은 원수를 위해 죽음의 고난을 겪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께 있으며, 예수님은 이 권세를 자신의 원수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사용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것을 행하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나아가라. 그리고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혼자 이 일을 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신다. 20절에서, 예수님은 과거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예레미야와 같은 사람들과 맺으신 약속을 우리에게 똑같이 하신다.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장20절).

복음을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전할 때, 우리는 굴욕공격을 반드시 당할 것이며, 반드시 고난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리스도도 우리를 대신하여 굴욕과 공격을 당하셨으며, 고난도 당하셨다.

결국, 성도들의 말을 듣고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끝내셨다면, 우리 중 그 누구도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Tags: 악의 문제, 예수님, 핍박, 하나님, 고난(고통), 권세, 자유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