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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실천

[듣기 마10:24-39] “왜 하나님이 질투하시는가?”

Posted by Margaret Foley on with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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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야기 하나로 시작하려고 한다: 서로 사랑에 빠져 결혼한 한 부부 이야기이다. 최소한 남편은 아내를 미치도록 사랑한다. 하지만 아내는 한눈을 파는 중이다.

아내가 가는 곳마다 구애자들이 따라다닌다. 남편이 집에 있는데도 이들은 문을 두드리며 부인에게 구애한다. 남편은 물론 기분이 좋지 않지만, 아내를 존중하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아내는 올바른 결정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의 신뢰에도 불구하고, 이 구애자들 중 한 명과 (또는 여러 명) 잠자리를 같이한다. 마침내 남편은 분개한다. 우리 대부분은 남편의 반응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아내와 같이 행동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과잉 반응을 보이신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무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열두 제자를 파송하신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던 무리가목자 없는 양과 같은것을 보시고 (마태복음 9:36)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비록 목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들은 여전히 주변의 무언가를 따르고, 서두에서 이야기한 아내의 경우처럼, 그들이 따르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평생 동안, 네 가지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영혼과 힘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할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예수님이 경고하셨듯이, 우리의 속사람은 오직 한 주인만 섬길 수 있다. 예수님을 사랑하려면 네 가지 구애자 중 어느 것도 우선순위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덜 사랑하고, 다른 구애자 중 하나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가 벌을 받게 되어 있음을 보여주신다: 당신의 온 존재를 예수님께 드리면 이 생애에서 하나 혹은 다른 여러 구애자들로부터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구애자 중 하나를 선택하면 당신의 몸과 영혼은 지옥에서 영벌에 처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이 구애자들은 누구일까? 첫 번째 구애자를 보면 매우 의아해할 것이다.

  1. 종교적 권위(교회 혹은 목회자) (마태복음 10:25)

기독교인에게 종교적 권위란 교회, 목사, 목회자, 성경공부 리더, 이 외의 기독교 리더, 교파, 혹은 회중도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종교적 권위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그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기 원한다. 좋은 날엔 그들은 종이요 목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그러나 나쁜 날에는 우리를 신랑으로부터 떼어놓는 역할을 한다.

때때로 교회가 우리에게 비성경적인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의 가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배우자와 끊임없이 싸우고 있고 곧 헤어질 지경이다. 당신의 자녀들(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혼할 수 있음을 아는)은 내색하지는 않지만 두려움에 차 있다. 당신의 가족은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신의 교회는 다른 계획을 갖고 있다. 새로 생긴 교회 사역의 최적임자가 바로 당신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당신의 결혼생활의 문제를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 외에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하나님이 당신을 그 일에 부르셨다고 한다. 교회는 당신이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면 하나님이 보상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디모데전서 3장 5절을 보면, 자기 집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교회를 돌볼 수 없다고 했다. 물론 당신은 교회가 당신에게 많은 것을 베풀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사역이 좋은 목적을 위한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당신은 결국 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된다. 당신의 가정이 어려움을 겪지만 가정문제를 해결할 시간은 없다. 사람들이 물으면, 당신은 그저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고 답하지만, 실제로는 교회를 위해 희생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때때로 목회자들이 설교하는 내용(설교든, 정치적 견해든, 삶에 대한 조언이든)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오는 말씀이라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굳이 목사들에게 주실 필요가 없으시다. 이미 성경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셨다!

목회자들이 우리가 성경을 잘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는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목회자들도 성경 말씀을 이해하려고 고심한다. 그래서 목회자의 설교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하는 것은, 우리 자신, 우리 목회자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책임이다. 양측이 서로 맞지 않는다면, 설교한 목회자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교파나 지역 교회에 국한시키려는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특정 종파나 집단에 제한되지 않으심을 반복적으로 성경에서 볼 수 있다. 우리가 종파에 대한 충성심을 보일 때마다 우리는 종교를 하나님보다 우선시한다. 종교적 방법이나 특정 지역 교회가 우리의 우상이 된다.

종교개혁으로부터 시작하여 유럽의 여러 종교 전쟁을 거치며 기독교인들은 제도화된 교회가 하나님과 아주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교회가 이 땅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고 오히려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종교적 권위를 하나님으로 간주하는 것은 복음서에서 예수님께 일어난 일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귀신의 왕(바알세불)이라 불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들의 목소리는 가장 컸다. 유대인이든 기독교인이든, 종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가 세상을 이해하는 자신의 방식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당신은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를 섬길 수 있고, 마찬가지로 목회자의 설교를 통해 성경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아님을 늘 의식해야 한다. 바울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성경과 반대되는 것을 말하면 그 천사를 믿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갈라디아서 1:8). 그러니 종교 지도자는 오죽하겠는가!

  1. 우리의 국가 혹은 문화(마태복음 10:28)

정부와 문화는 늘 우리의 마음을 놓고 경쟁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나라의 선량한 시민이라면, 결국,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한 좋은 증인이 아닌가? 성경은 심지어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도 말씀하셨다(로마서 13:2).

그러나 국가 혹은 문화를 우선순위에 두게 되면, 주일에 정치적인 내용의 설교를 하게 되고 전쟁과 파괴를 촉구하게 된다. 기독교는 우리나라(그리고 아마도 동맹국의 종교)에 속하는 종교가 되고 만다. 우리는 설교를 민족적 혹은 문화적 노선을 따라 나누고, 나라 섬기는 일을 하나님 섬기는 일과 혼합시키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부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 항상 후자를 택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정부가 원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라간다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만일 정부가 공공장소에서 전도하지 말라고 했을 때 이에 순종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이 어떤 특정 교파에 국한되지 않으시는 것처럼, 그는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으신다: 그는 북한의 수장이며 남한의 수장이시다!

당신의 국가와 그리스도가 의견을 달리할 때, 당신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당신은 처벌을 받게 된다. 만일 전도를 한다면육신은 죽일 수 있으나 영혼을 죽이지는 못하는 사람들에게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저선량한 시민이 되고자 한다면, 당신은 영혼과 육체 모두를 지옥에 처하게 하실 분에게 벌을 받게 될 것이다.

현명한 선택을 하기 바란다.

  1. 가족(마태복음 10:35)

교회의 경우처럼, 우리는 가족을 그리스도보다 우선순위에 두기 쉽다. 성경은 실제로 우리에게 가정을 잘 돌보고 잘 다스리라고 명령한다! 가족을 잘 돌보는 일과 가족을 그리스도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것에는 차이점이 있다.

그 차이점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당신 가족의 기초는 무엇인가?

그리스도는 우리 가족에게 평화를 주러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도리어 갈등을 일으키려고 오셨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거의 모든 가정은 잘못된 기초 위에 세워졌다. 어떤 가족은 만나기만 하면 격한 감정들이 분출되므로 평화를 위해 서로 만나는 걸 피한다. 어떤 가족들은 충격적인 일을 경험한 후, 그것을 제대로 다루는 대신, 건강치 못한 습관에 빠져든다(각자 다른 방에서 먹는다든지, 행복한 척한다든지, 사이가 멀어진다든지). 그러나 이러한 건강치 못한 습관은 충격적 경험을 가정의 기초가 되게 할 뿐이다.

가족보다 그리스도를 우선순위에 둔다는 것이 말하기는 쉽고 행하기는 어렵지만, 이는 그리스도를 가정의 기초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진정 우리 가정의 기초가 된다면, 갈등이 생길 때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하려 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정말로 우리 가정의 기초가 된다면, 우리는 자신의 결함과 불완전함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실제로 우리 가정의 기초가 된다면,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가정의 중심이 되게 한다면 모두가 반발할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반목하게 될 것이다.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자녀가 우리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나쁘게 말할 수도 있다. 심지어 우리가 속한 집안이 우리와 의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가족이 그를 따르지 않는 변명이 될 수 없다고 보신다.

“누구든지 사람[가족]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가족, ]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마태복음 10:33, ‘사람가족으로, 아버지를내 가족으로 바꾸어 보라).

  1. 우리 자신(마태복음 10:39)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고자 한다면 먼저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마태복음 16:24).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하고 싶은 일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려 할 때 우리의 육체는 어떻게든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사이가 나빠요! 내가 거짓말하지 않으면, 우린 영원히 끝장날지도 몰라요!”

“하지만 내가 모두에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걸 알아주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게 나를 성적으로 기분 좋게 해요! 연구 결과도, 자신의 성적 충동을 억제하는 것은 실제로 건강에 좋지 않데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제가 위험해질 거예요. 제겐 가족이 있어요. 하나님이 가족을 잘 돌보라고 하셨잖아요. 저 자신 또한 안전하게 지켜야 해요.”

“하지만 결혼할 때까지는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 당장 남자 친구를 찾아야 하거든요!”

“이 여자가 제 아내가 아닌 건 알아요. 하지만 결혼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떠나기도 싫어요! 내가 결혼하면 엉뚱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그렇다고 떠나면 외로워질지도 몰라요!”

만일 이러한 소리들이 우리를 다스리게 한다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하실 말씀은 딱 하나이다: “너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진심이시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남편처럼 버림받았어도 그리스도는 우리를 존중하신다. 구애자들이 우리를 따라다닐 때도 그는 잠잠히, 우리에 대한 믿음을 지키신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애인과 잠자리를 같이한다면, 그는 분노하시며 당신을바깥 어두운 데에내던져,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하실 것이다(마태복음 22:13). 

그러면 그리스도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다른 무엇보다 최우선순위에 두고 다른 구애자들의 달콤한 요청들을 무시함으로써 그를 사랑할 수 있다. 그 달콤한 요청들은 절대로 오랫동안 단맛을 유지하지 못한다. 당신이 그들에게서 멀어지면 구애자들은 화가 나서 당신을 처벌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힘은 하나님과 비교할 때 무시할 수 있다

이 메시지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하면, 본문 말씀을 다시 읽기를 권한다. 이것은 약한 구절이 아니다. 그 안에는’, ‘부인하다’, ‘지옥’, ‘부정하다라는 말들이 있다. 본문 말씀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말씀이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 있다: 당신 스스로 이 모든 것을 하나님보다 결코 더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인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우리 교회, 정부, 가족, 우리 자신).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새로운 마음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으시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하고 세례받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 일이 있을 때 성령을 받게 되고 성부와 성자가 우리 안에 거하기 위해 오실 것이다. 그때 당신은 마음, 목숨,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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