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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실천

[듣기 마 9:35-10:8] 예수님이 12사도를 부르신 일이 부르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Posted by Margaret Foley on with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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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을 살펴보기 전에, 성경의 장과 절수가 어떻게 나누어지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성경은 원래 장, 단락, 각 절로 나누어져 있지 않았다. 또한 단락마다 제목도 붙어있지 않았다. 실제로 원문 성경을 보면 단어 사이에 구두점이나 공백 없이 하나로 길게 이어진 일련의 글자들을 보게 된다.

왜 이것이 중요할까?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본문 말씀을 세 부분, 즉 두 개의 장(9장과 10)과 세 단락으로 나눈다. 만일 출판사들이 구분해 놓은 말씀 구조를 하나님이 의도하신 구조로 여긴다면본문 전체에 흐르는 말씀의 연속성을 놓칠 뿐만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핵심도 놓치게 될 것이다. 수세기 동안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사도를 택하고 파송하시는 장면(말씀에 기록한)을 하나님의 성품에서 나오는 아주 심오하고 반복되는 주제에 대한 계시가 아니라, 그저 형식적이고 독립적인 사건이라고 결론지을지도 모른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각 단락의 제목과 장 숫자를 가리고, 본문 말씀을 묵상해보자.

마태복음 9장 35-38, 10장 1-8

본문 말씀의 세 단락을 한 사건으로 읽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셨기 때문에, 12제자를 보내셨음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9 36절은 예수님이 무리들을목자 없는 양과 같이보았다고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아주 잘 드러내주고 있다.

먼저,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준다. 왜 그럴까? 구약에서도 하나님이 바로 이 점을 거듭 반복하여 언급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양을 돌보라고 선택하신 사람들은 위험한 징후가 나타날 때 잠들거나 달아나기 일쑤였다. 이 탄식은 일찍이 민수기 27장 17절에서부터 기록되어 열왕기상 22장 17절에스겔 34장 5절에 계속 등장한다. 하나님은 계속 이 문제를 언급하신다

성경은 그저 이야기 시리즈로 쓰여진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지속적으로 계시한다. 따라서 민수기가36장으로 끝난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무리들을 목자 없는 양처럼 보신 것은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천 년도 넘게 지속된 하나님의 성품인 것이다. 예수님의 긍휼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이 자신의 양 떼 돌보기를 소홀히 한 데 대해 느끼셨던, 그리고 하나님이 항상 자신의 백성에 대해 품으셨던 바로 그 고뇌와 연민이었다.

만일 양들을 홀로 남겨둔다면 양들은 방황하게 된다. 방황하는 양은 위험에 노출되어 깊은 틈새에 빠지거나 맹수에 잡아먹히게 된다. 방황하는 양은 절대 안전하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은 택하신 목자들을 부르신다. 그는 그들을 불러세웠으나 그들은 그의 백성을 돌보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가장 깊고 지속적인 관심사 중 하나이다: 그의 백성들이행복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잘 받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만일 일터에서 목자가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면, 양을 안전하게 돌본다는 것이 양을 행복하게 하거나 목자를 사랑하게 하는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다. 목자는 개를 동원해 양을 치게 함으로써 양이 안전한 지역에 머물도록 한다. 또한 양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지팡이나 갈고리 같은 것으로 잡아당기기도 한다. 그래도 계속 헤매는 양은 다리를 부러뜨린 후 치료될 때까지 목자 곁에 둔다. 이는 양이 목자의 존재에 익숙해지게 하기 위해서다.  

많은 경우, 목자가 돌보는 양은 자신의 양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자는 양의 안전을 위해 끊임없이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킬 것이다.

구약에는, 다윗 왕이[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사무엘상 13장 14절)이라고 한 기록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다윗 왕이 목자로 인생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17장 34-35절에서 다윗은 사울에게 목자로 산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들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맹수가 양을 공격할 때마다 다윗은 그 짐승과 자신의 양 떼 사이에 서곤 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것은 안중에 두지 않고 아버지의 양떼를 구해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다윗을 보고이는 내가 내 백성을 맡기고 싶은 사람이다.”라고 하신 이유이고 성경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 이유이다.

어떻게 우리가 이것을 알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을 때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보이신 리더십의 표본이다. 목회자, 청소년 리더, 정치가, 어머니, 그리고 심지어 친구에게까지도. 평생토록,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 즉 그의 백성을 우리의 보살핌에 맡기신다. 우리에게 가족 구성원을, 친구를, 그리고 일터의 동료들을 주신다. 그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이 사람들을 주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그들을 이용해서도 안 되며, 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우리를 복종시켜서도 안 된다. 그들은 우리가 목양할 대상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가는 좁은 길로 그들을 계속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만일 그들이 방황하면, 우리는 목자의 갈고리를 사용하여 그들을 원래 자리로 끌어와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네가 잘 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내게 물으신다. 그리고 나는 이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칠 용의가 있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이 가장 높은 수준의 목양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실상, 에스겔 34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인간 지도자들에게 너무나 실망하신 나머지,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라고 약속하신다

그런 뒤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요한복음 10장11절).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단순한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직접 드러내신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직접 목양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제 그분이사람의 모습으로이곳에 계신다. 이것이 바로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이 하고 계시는 일이다.

본문 말씀 앞부분(9)을 보면,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침상에서 일어나 걷게 하시고, 죽었던 여자 아이를 살리시며, 두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가장 최근에는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는 것까지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다.(마태복음 9:34).

하나님이 백성들의 목양을 맡기셨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바로 앞에 서 계실 때조차도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심지어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의지한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예수님이 계신 곳엔 어디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따라다녔다.

예수님은 무리들을 보시며 그들을불쌍히여기셨다(마태복음 9:36). 헬라어 원문에는 이것이 더욱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이 그들을 보셨을 때, 그의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셨다고 표현한다. 예수님이 느끼신 것은 연민보다 훨씬 깊었다. 바로 이 속이 비틀리는 고통 때문에, 그의 측근 12명을 거리로 파송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12제자를 파송하신 일은 영광스럽고 공식적인 행사가 아니었다. 산꼭대기에서 어떠한 의식이 거행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예수님이 길 잃은 양들을 볼 때 느꼈던 깊고도 통렬한 고통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것은 졸업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응급 상황과 같았다. 그런 후 예수님은 빠른 명령을 내리신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마태복음 10:8).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중요한 진리를 상기시키신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복음 10:8). 달리 말하면, 너희가 가진 것은 모두 내게로부터 온 것임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파송하셔서 사람들을 맡기신다면, 그것은 우리가 특별한 입장을 취하거나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며, 대가를 (마지못해서라도) 기대하라는 뜻도 아니다.

그 누구보다 지도자들은 겸손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그리스도께로부터 왔고, 목자는 그리스도시지 우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양이다. 목자의 음성을 구별할 만큼 긴 시간 동안 목자와 함께 해왔지만, 우리는 처음에도 양이었고 마지막에도 양일뿐이다.

우리는 단지 양일뿐이라면 어떻게 다른 양을 인도할 수 있는가?

목장에 있는 소들을 생각해보라. 매일 아침 종소리가 울리면 소들은 방목지로 줄지어 나간다. 목장 주인이 가라고 하지 않아도 소들은 길게 줄지어 목초지로 간다. 왜일까? 줄을 이끄는 소들은 목장 주인을 따라 목초지를 여러 번 따라다녔기 때문에 방목지가 어디인지, 왜 그리로 향하는지도 알기 때문이다.

주목하라. 선두에 선 소는 다른 소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특별한 복장을 하거나 특별한 외양간에서 사는 것도 아니다. 다른 소들에게 경의를 표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어디로 가고, 왜 가는지를 알 뿐이다. 기독교 지도자로서 우리 모두는 선두에 선 소와 같다. 단지 이 길을 오랫동안 걸어왔기에 앞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더 합당하거나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을 목양하러 오셨다. 그는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와 함께 걸으셨다. 그가 우리와 동행하셨으므로 우리도 그 길을 따라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것을 그분은 원하신다. 그러나 그 길을 따라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를 이끄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희생하셨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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