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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마 18:15-20] “그리스도인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Posted by Margaret Foley on with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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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15-20

인간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을 보며, 인간은 실제로 갈등을 다루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갈등이 생길 때, 우리는 다음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로 반응한다.

(1) 싸운다 : 억울한 사람은 자신이라 주장하며 보상을 요구한다.

: A는 자신에 대해 B가 다른 사람들과 험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정당하게 속상해한다. 그러나 B는 그저 자신이 A에 대한 사실만, A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사실들을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고 말한다. A B 모두 옳은 면도 그른 면도 있지만, 둘 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A B는 상대방이상식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서로 대화하기를 거부한다

(2) 회피한다 : 갈등을 피하고자 속상해하거나 상처를 입지 않은 척한다.

: B는 A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말을 한다. A B에게 이야기하는 대신 자신이 더 성숙한 사람인 마냥 기분 상한 일에 대해 B에게 말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그 후 A는 다른 사람들에게 B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여러 번 언급하고, 목사님에게 기도를 부탁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B에게 절대 말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반응 중 어느 것도 갈등을 다루거나 해결하지 못한다. 두 가지 방법 모두 효과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즉각적으로 마태복음 18:15-20을 떠올릴 것이다. 이 본문에서 그리스도는 화해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신다. 이 본문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명령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그 사람의 잘못에 대해 권고하라”(마 18:15).

☐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마 18:16).

☐ ”교회에 말하고”(마 18:17).

☐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17).

각각의 명령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 목록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건성으로 이 절차에 따라 해본 후 서둘러 각 사항을 점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 B에게 가서 그의 잘못을 말했는데 B가 동의하지 않자 그 자리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나열한 명령 목록에 그 일을 실천했다고 표시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A는 근본적으로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A이 말씀이 내 상황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 말씀은 내 삶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이 말씀이 내게 명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함으로써 A는 본문 말씀의 문맥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말씀의 목적을 무시하고 있다.

마태복음 18:15-20 (흔히 문맥과 상관없이 많이 읽히는) 마태복음 18:10-14(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과 마태복음 18:21-35(용서할 줄 모르는 종 비유) 사이에 있다. 이 세 말씀을 모두 읽을 때, 우리는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을”( 18:12-13) 뿐 아니라 우리 또한 그와 같이 행할 것을 요구하시는( 18:32-33)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예수님이 형제와 상대하여 잘못에 대해 권고하라 하신 것은 그저 한 번 하고 바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일곱 번뿐 아니라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가기를 원하신다(마 18:22)!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이것이다. “만일 누군가와 갈등을 겪고 있다면, 너의 형제가 너와 함께 그 문제 해결하기를 거부할 때까지 그를 상대하여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너의 책임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예수님은 갈등 해결을 위한 조언을 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 지침들을 따르라고 명하시는 바이다. 이는 이러한 지침을 십계명만큼 (또는 십계명 전체를 아우르는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막 12:31>는 명령만큼) 중히 여기라는 뜻이다. 이러한 지침을 따르지 않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회개해야만 하는 죄이다.

둘째, 성경은갈등이 있는 경우 영적 상담자, 배우자 혹은 친구와 상의하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분명히 갈등을 겪고 있는 당사자와 이야기하라고 말씀하신다. 갈등을 상담자, 배우자 또는 친구에게 먼저 가져가면, 성령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인간의 조언을 더 신뢰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하는 경우일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갈등을 풀어보려고 한다면,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처리해야 한다. 성령 하나님은 어떤 당사자에게도 편파적이지 않으시다. 사실 성령 하나님은 갈등이 해결되기 전에 보통 양측 모두에게 자기 죄를 깨닫게 하신다.

간혹 이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가옳다거나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절대 말씀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우리의 상처를 상대 형제에게 털어놓고 우리의 말을 상대방이 경청하거나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그리스도인이 서로 의견을 달리하면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지만, 우리가 의견을 함께하면 하늘 전체가 움직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형제에게 우리가 옳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궁극적으로 우리는 타락한 인간이다. 우리 자신을 안다면, 우리의 사리사욕이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적잖게 가린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가 형제와 마주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진리가 아니라 주님의 진리, 즉 니케아신경, 믿음의 신조들, 그리고 성경말씀이다. 이것이 바로 형제가 우리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때 증인과 대동해야 하는 이유이며, 그 목적은 형제에게 우리 자신의 진리가 아닌, 주님의 진리를 확신시키기 위함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자기 성품이 아닌, 주님의 성품을 증거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옳다 해도 형제나 자매를 잃는 것보다 우리의 자존심과 평판을 잃는 게 더 낫다. 빌립보서 2:3-4이 말씀하듯,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한다. 왜 형제 대신 자기를 낮춰야 하는가? 왕이 종의 빚을 짊어지려고 자신을 낮춘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얻기 위해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기 때문이며(빌 2:8), 그래서 당신도 그렇게 해야 한다.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갈등을 절대 부인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함께하길 원하는 분이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단지 또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 당신의 적 그리고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과 당신의 적이 함께할 때 하나님은 당신과 당신의 적을 통해 존재하기로 택하신다. 눈물, 고함, 모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함께할 것을 약속하신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는 하나님의 약속은 바로 뒤 말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18:20)는 말씀에 달려있다. 이는 단지 두 사람이 합심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두 사람에게 상 주신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은 경건하지 않은 온갖 일에 뜻을 같이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개인적 상처에 대해 서로 갈등이 있을 때, 우리 자신의 이익이나 손실보다는 하나님의 성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야말로 하늘을 움직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언제든 갈등을 푸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우리가 갈등을 겪고 있을 때이 갈등은 절망적이고 불필요해. 관계를 끝내는 게 낫겠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찢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스도의 형상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행동은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것만큼 나쁘다. 예수님이 응당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실 수도 있다.

더욱이 우리가 이러한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하신 일과 여전히 하시는 일을 무시하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인 우리는 그의 명령을 지키는 일에 있어 늘 부족하다. 매일 우리는 그릇된 일을 하지만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우리를 포기하거나 보상을 요구하실 권리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마태복음 5:9에서 예수님은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신다. 이 화평하게 하는 자는논쟁에서 이기는사람도, ‘진리를 고수하는사람도, 혹은갈등을 전혀 겪지 않는사람도 아니다. 그들은 끝없이 적에게 직접 찾아가는 사람, 자기 자존심보다 형제를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그들보다 먼저 그리스도가 행하셨음을 알고 행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되자. 이러한 사람이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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