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Of The Martyrs - Korea

Go

말씀과 실천

[듣기 마 16:17-27] “예수님은 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셨을까?”

Posted by Margaret Foley on with   Comments

순교자의 소리의 다른 영상들을 보기 원하시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마태복음 16:17-27

예수님은 마태복음 16:18에서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베드로를 축복하셨다. 그러나 다섯 절 후 마태복음 16:23에서는 예수님이 바로 이 반석을 책망하신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예수님이 베드로를 축복하신 이후, 성경은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셨다고 기록한다(마 16:21).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소식에 대해 담담하다. ‘당연히 예수님은 이것을 하셔야 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세상을 구속할 방법이 달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제자들에게 이 소식은 재앙과 같았다.

이 시기에 예수님은 이스라엘 북부에서 사역하셨다. 병자를 고치고, 폭풍을 잠잠케 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은 그를 선지자라 믿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 믿었다. 베드로는 심지어 그를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다(마 16:16)!

선지자들은 유대인들에게 메시아에 대한 어떤 특정 기대치를 심어주었다. 그 메시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무거운 멍에를 풀어주고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실 것으로 기대됐다(당시 압제자는 로마였다)(사 9:4).

그러므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자고 하셨을 때, 그들은 열광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나라를 로마의 압제에서 구하실 것이다.’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시 정부를 전복시키거나 마음을 얻는 것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는 제자들에게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말씀하셨다(마 16:21).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선지자들은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신다고 했지 고난받고 죽임당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이라는 말씀은 제자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자들은 메시아를 따라 하나님 나라의 영광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메시아는 그들을 죽음과 고난으로 이끌고 계셨던 것이다.

말이 안된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며 말한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

성경은 베드로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대답을 알려준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자신에게 솔직하다면, 우리는 예수님보다는 베드로의 말이 더 잘 이해됨을 인정할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었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었다. 그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든 표적을 보았고 그리하여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그리스도를 따라나섰다.

만일 예수님이 죽으신다면 베드로의 개인적인 소망과 꿈도 죽고 만다.

이것을 알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반응이 부당하거나 가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베드로의 항변이 그르거나 심지어 죄일 수도 있지만 사탄에 속한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성경 말씀이 혼란스럽게 느껴질 때 사전이나 신학교를 의지할 필요는 없는데, 이는 본문 자체가 종종 답을 주기 때문이다. 때때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언어나 문화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초점의 차이이다.

성경을 펼 때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행동이다. 일단 하나님의 행동을 발견하면 다른 것들은 제자리를 찾는다. 예를 들어,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중요한 행동은 설명하거나 책망하거나 혹은 명령하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다시 오시는 것이다.

27절에서 예수님은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행동은 바로 나중에 (후에 밝혀지듯 정확한 날짜는 예수님 본인도 알지 못하시지만) 오시는 일이다.

“인자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성경 말씀 자체가 (예를 들면, 마태복음 16:13-16) 이 진리를 드러내 준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성경 구절을 읽지 않았다 해도 우리는 같은 결론에 다다랐을 것이다. 어떻게? 바로 니케아신경을 통해서이다. 니케아신경은 성경 전체를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이는 말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때마다 니케아신경에 의지할 수 있음을 뜻한다. 본문의 경우, 니케아신경은그리스도가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영광중에 오실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이는 명백히인자에 대한 예수님의 주장에 상응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말씀하고 계심이 틀림없다.

주목해야 할 중요한 한 가지는 하나님의 명령은 항상 자신의 행동에 근거하여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은 십자가를 지지 않으시면서 제자들에게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명령하지 않으신다. 이 본문은 자신이 고난받고 죽임당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설명으로 시작된다. 고난을 겪으라는 그의 명령은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으며,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주어진 일도 아니다. 예수님이 먼저 자기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우리도 우리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베드로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하시며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신다(마 16:23). 베드로는 깨닫지 못했지만 그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유혹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손에 고난당하고 죽으심으로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되게 하는 대신, 베드로는 이 세상의 주요한 세 가지 유혹, 즉 성공적이고 힘이 있으며 안전하게 만들려 한 것이다. 사실 베드로의 말은 광야에서 있었던 사탄의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모든 권세와 모든 권위가 네게 주어졌다. 그러니 내가 네게 준 천하만국에 순종을 명하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4:10에서 사탄을 물리치신 것처럼, 마태복음 16:23에서도 베드로를 거절하신 것이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천국과 지상에 있는 모든 권세와 권위를 부여받으셨기 때문이며,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그를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세상적 욕망을 경건한 욕구로 포장해보라. 이러한 욕망은 여전히 우리 자신의 것이다. 결혼을 생각할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 여부를 묻는 대신, 배우자를 통해 결혼의 경건한 소명을 이룰 수 있게 해달라며 열심히 배우자를 놓고 기도할 수 있다. 혹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하나님께 구하는 대신, 하나님의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부()를 달라고 열심히 기도할 수도 있다. 솔직히, 누구든 일전에 한번쯤은 그래본 적이 있을 것이며,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허울을 꿰뚫어 보신다. 게다가 그분은 우리가 우리에 대해 미처 알지 못하는 것도 아신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욕망은 완전히 무질서하다. 사랑, , 먹는 것, 잠과 같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절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이러한 것을 손에 넣으면, 한동안은 행복할지도 모른다. 욕망에 빠지게 된다. 더 이해심 많은 배우자, 더 많은 은행 잔고, 후식, 혹은 5분 더 긴 잠 등,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다. 제한되어 있는 것은 우리의 행복뿐이다.

우리의 어리석은 모든 일, 잘못한 모든 일, 죄 많은 모든 일에 대한 크고도 무거운 대가를 치르기 위해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시고 인간이 되셔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늘 옳고 우리에게 최선인 것을 행하려 하신다. 이 사명에서 그를 흐트러뜨리거나 마음을 바꾸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베드로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 세상의 문제는 정치나 우리 자신의 욕망보다 훨씬 크다. 우리는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는 우주 안에서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죄에 절어 있고 그저 자기 위주인 그런 점 말이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과 피조성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세상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우리를 고치려면 진정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것을 아신다.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은 우리뿐만 아니라 창조된 세상 전체가 바로 서려면, 단 하나의 십자가, 바로 그의 십자가를 지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감기약 처방을 해준 의사에게는 반문하지 않으면서, 왜 우리는 우리의 망가짐을 고칠 수 있는 처방을 해주신 주님, 우리의 창조주께는 반문하는가? 왜 우리는 주님을 보며주님은 잘 모르십니다. 세상은 그렇게 해서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가?

그분은 세상이 죄에 빠지기 전에 존재하신 유일한 분이시다.

예수님은네가 죽지 않아도 되게 내가 죽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는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신다(마 16:25).

우리의 잘못된 것은 우리 존재의 핵심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마음이 필요하며, 이 마음은 세례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욕망에 따라 죽을 것인지, 아니면 그의 죽음을 따라 육적인 삶을 거스르는 삶을 살지를 아신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영광중에 다시 오실 것을 안다. 이것은 누가 유혹하든 뇌물을 쓰든 하나님이 바꿀 수 없는, 바꾸지 않으시는 실제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질타하고 베드로처럼 우리에게 옳은 것이 무엇인지 말씀드린다면, 그가 돌아오실 때 지옥에서의 영원한 고통을 지불할 것이다

지금은 자비의 때이다. 주님을 따라 고난에 참여할지 여부를 선택해야 하는 때이다. 그러나 이러한 때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니케아신경이 말했듯이 “[주님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영광중에 다시 오실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잃는 자는 생명을 보존할 것이다. 목숨을 지키려고만 한 사람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면 존경, , 건강, 생명 등 모든 것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무언가를 포기하는 사람은 지금과 영원히 그의 교회를 통해 백 배의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Tags: 문맥, 사탄, 예수님, 하나님, 하나님의 성품, 베드로, 니케아신경, 욕망, 하나님의 계획,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