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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실천

[듣기 마 14:22-33] “왜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이 약하다 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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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22-33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던 제자들은 타고 있던 배가 사나운 폭풍 앞에 속수무책임을 본다. 파도에 배가 널을 뛰고 바람에 배는 곧 뒤집힐 것 같다.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 가운데 한 유령 같은 존재가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사람이 물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은 무서워한다.

 “유령이다.”라고 그들은 서로에게 속삭인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 사람 곧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배를 때리는 파도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외친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주님은 “오라”고 답하신다. 

그래서 베드로는 배에서 격랑 위로 뛰어내린다. 파도 속을 걸어 예수께 나아가나, 곧 살을 파고드는 바람을 깨닫게 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베드로는 물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는 그리스도께 손을 내밀고, 자신의 성품대로 그리스도는 그를 구하신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베드로에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꾸짖으신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은 목사님, 교회 성도, 그리고 선도적인 기독교 저자들로부터 이러한 설명을 들어왔다. “이 이야기는 기독교인의 삶에 관한 은유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눈을 뗐을 때 베드로는 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의 성난 폭풍 가운데서도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성경 말씀이 이 구절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르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말씀을 해석하는 도구를 조심해야 한다. 자유 세계에는 교회, 신학교, 인기 기독교 작가 등 쓸 수 있는 많은 도구가 있다. 이러한 것들의 도움 먼저 구하는 일은 아주 간단하며 힘들지도 않다. 하지만, 이러한 도구가 없는 나라들이 많다. 그런 나라에서는 성경을 가지는 행위 자체가 위험하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은 갈 교회가 없을 수도 있고, 졸업할 신학교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불리한가?

그렇지 않다.

성경 말씀은 성령이 우리의 스승임을 강조한다. 침례를 통해 우리는 성령을 받는 동시에 성령이 모든 말씀을 열어주실 거라는 약속도 함께 받는다. 성령을 통해 말씀이 말씀의 뜻을 푼다. 이게 무슨 말일까? 종종 이것은 우리가 매일, 평생토록 성경을 읽다 보면, 성령이 우리가 읽어야 할 말씀을 기억하게 해 주고 모든 말씀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이해하게 도울 거라는 것을 뜻한다.

한 예를 보자.

우리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읽고 의지할 때마다, 말씀의 뜻을 놓칠 확률은 대단히 높다. 예를 들어, 이 본문 말씀에 관한 우리의 즉각적인 해석(“베드로가 예수님에게서 눈을 뗐을 때 빠졌으므로, 우리는 폭풍이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우리 눈을 그에게 두기를 배워야 한다”는 식의 해석)은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해 어떤 것을 드러내는지보다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는지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야 할까? 물론 성령하나님이다. 성령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게 하며, 어려운 질문을 만날 때 –그리고 이것과 연관된 다른 성구가 떠오르지 않을 때—답하기를 미루고 일단 계속 읽어가는 것에 우리는 만족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성령하나님을 통하여 성경이 자체적으로 질문에 항상 답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하고, 성령님이 결국 답하신다는 것을 신뢰하기를 배워야 한다.

오늘 질문의 경우, 성령 하나님은 마태복음 15장에서 우리 질문에 답하신다. 

두로와 시돈을 여행하신 후 예수님과 그의 제자는 가나안 여자 하나가 뒤를 따르며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소리치는 것을 보게 된다. 예수님은 그녀의 간절한 청에 답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그 여자는 계속 따라오며 소리친다. 마침내, 제자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다.

그들은 예수님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라고 사정한다.

그러자, 예수님이 여자를 돌아보며,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말씀하신다.

여자는 단념하지 않는다. 그 앞에 절하며 계속 도움을 요청한다.

예수님은 답하신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이것은 칭찬의 말이 아니다. 그러한 말은 유대인 가운데 살기로 한 그 어떤 이방인이라도 그의 아픈 곳을 찔렀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답에는 성냄의 흔적이 전연 없다.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여자를 칭찬하신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이 말을 읽을 때 우리는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그리스도의 답을 기억해야 한다. “믿음이 작은 자여!” 그리고 궁금히 여겨야 한다: 예수님이 보시는 두 사람 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쨌든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고 여자가 한 것은 계속 말한 것이 다가 아닌가!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믿음”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성경적 의미에서 믿음은 하나님이 항상 성경을 통해 보이신 자신의 성품대로 행하실 것에 대한 확신이고 그 행동을 우리는 인생 가운데 받아들이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신 것을 믿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품이 세상과 우리 삶 가운데 전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 또한 의미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믿음을 가진다는 것의 가장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당신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믿음 없이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할 수도 있다.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성품을 안다는 것을 뜻하며, 둘째로는 그가 세상과 우리 인생 가운데, 성경을 통해 드러내신 당신의 성품에 따라 계속하여 행하실 것을 신뢰하고 반기는 것을 뜻한다.  

성경에서 이러한 부분을 가장 분명하게 엿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는 시편이다. 시편에서 하나님의 자녀는 일제히 자신의 힘든 부분과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함께 고백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가리켜 전능하고 전지하며 자비가 풍성하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에 자신들이 경험하는 고난을 혼란스러워한다.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계시의 말씀 안에 그들의 기도를 포함하심으로 그들의 믿음을 존중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이 당신은 종일 교회에 있을 수도 있고 종일 기도하며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반하는 것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라면, 사실 우리의 기도는 믿음 잃기를 연습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순교자처럼, 우리는 제가 무엇을 했길래 제게 고통 주시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하는 대신,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라고 큰 소리로 부르짖어야 한다(계 6:10).

이 모든 것이, 베드로와 가나안 여자 사이의 차이점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상관이 많이 있다.

믿음이 클수록, 우리는 (성령하나님을 통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이 항상 똑같을 것을 더 확신할 수 있고, 우리 인생 가운데 자기 성품에 따라 보이시는 그의 행하심을 더 반길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가나안 여자처럼, 하나님의 이러한 성품에 따라 행하실 것을 배울 것이다.

(“이방인” 혹은 외국인”인 관계로) 아마도 성경을 읽은 적이 전혀 없으면서도, 이 여자는 예수님에 관해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그가 누구시며 그가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에 대해 들은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는 일을 그렇게 끈질기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자기를 무시하고 또 논박하심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는 예수님, 또 그의 성품에 관해 조금 들은 부분을 계속해서 믿는다. 그 여자는, 예수님이 들은 성품과 반대로 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첫째, 그가 자기 딸을 고치실 수 있다는 것과, 둘째로, 그에게 자기 딸을 고치실 뜻이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그녀가 예수님에 관해 가지고 있던 그 약간의 지식이 옳았음이 곧 드러난다. 예수님은 그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녀의 딸을 고치셨을 뿐 아니라 여자의 믿음을 칭찬하신다. 성경에 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는 믿음을 가진 것이다.

한편 베드로는 예수님과 수년을 함께 했다. 그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고, 불치병을 낫게 하시고 폭풍을 잠재우시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는 성경 말씀을 잘 알며, 하나님의 성품에 관해 배워왔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베드로는 거센 바람을 신뢰하고 그를 그런 와중에 보호하실 예수님의 성품을 의심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두 사람 간의 차이이다. 

하나님은 당신 삶에 있는 위대한 신뢰 혹은 큰 위험의 순간에 관심 없으시다. 또한 당신이 과거에 얼마나 그를 신뢰하였는지에도 관심 없으시다. 그보다는, 당신이 하나님과, 그가 자기 성품에 대해 성경 말씀을 통해 스스로 말씀하신 것을 다음 순간에 신뢰할 것인지에 관심 있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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