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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실천

[듣기 마 13:18-23]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백 배의 결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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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3:18-23

이 비유를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생각하지 않고토양의 비유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종종 이 네 가지 유형의 토양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에 초점을 맞추고 이것을 우리의 마음에 적용한다. 그러곤나는 어떤 땅인가?’라고 자문한다.

‘나는 악한 자가 내게서 복음을 빼앗아 갈 수 있는 땅인가? 나는 처음에는 기쁨으로 말씀을 듣지만, 반대에 부딪힐 때 곧 넘어지는 그런 땅인가? 아니면 세상의 염려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그런 땅인가?’

이 말씀을 설교할 때 목회자들은 종종 영적 잡초(갈등)를 제거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토양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토양이 아니라씨 뿌리는 자였다.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마13:18). 비록 예수님이 토양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설명하기는 하셨지만, 비유의 제목을 보면 예수님은 (토양이 아닌) 씨 뿌리는 자를 더 강조하신다. 왜 그럴까

사실 만일 당신이 토양에서 눈을 떼고 씨 뿌리는 자에 집중하면,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왜 이 씨 뿌리는 자는 소중한 씨앗을 척박한 곳에 뿌리는 것일까?”

만일 농부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종자()가 귀중하다고 말할 것이다. 종자는 무한하지 않으므로 어디에 어떻게 뿌려야 할지 잘 생각해야 한다. 씨앗은 어디에서나 자랄 수 없다. 이것이 농부가 밭을 소유하여 갈고, 돌려지으며,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 농부는 소중한 씨앗을 (새가 와서 먹어버릴) 길가에, 흙이 많지 않은 (그래서 싹이 시들어버릴) 돌밭에, 그리고 (그 기운이 막힐) 가시떨기 위에 뿌린다. 이상하지 않은가?

길을 가다가 농부가 길가에, 혹은 돌무더기에, 혹은 가시떨기가 많은 곳에 씨를 뿌리는 것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러한 곳이 농부가 씨 뿌리기로 선택한 첫 번째 장소임을 알았다면 또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도 당신은저 사람이 지금 무슨 일을 하는 거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농부의 행동이 매우 이상하기 때문에 분명 의도한 바가 있을 것이다: 성인이라면 씨앗을 일부러 길가에 뿌리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먼저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물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본문 말씀을 읽는다. 본문 말씀 전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읽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삶을 말씀에 따라 빚는 대신) 우리 자신의 삶에 맞게 말씀을 빚을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

또한 문맥을 떠나 말씀을 읽게 되면, 우리는 그 말씀이 인생의 일상 속으로 언제든지 오실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것보다는 일련의 영원한 진리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예수님은 무언가에 대한 반응으로 이 이야기를 나누신 것이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답을 찾으려면 본문 말씀보다 몇 장 앞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본문 말씀이 별개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이다. 즉 이 비유는 본문 말씀 이전 이야기의 연속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던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던 부분에서 시작된다(마9:36). 예수님은 이 무리를목자 없는 양같이여기셨다. 왜일까?

그들의 종교 지도자들이 더 이상 그들이 섬긴다고 주장하는 하나님을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문 말씀에 앞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마귀에게서 온 것이라고 세 번이나 비난하며,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고 주장했다(마12:24). 그러나 하나님의 힘이 마귀에게서 온다고 주장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이다( 12:31-33).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을 돌봐야 할 사람들이 죄를 지었고 그들의 죄는 용서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멀어지게 인도했고, 이를 보신 예수님은 깊이 탄식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열두 명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을 부르신 후, 그의 양들에게 가서 돌보라고 가르치신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라며 제자들을 가르치신다(마10:8). 그리고 그들이 이러한 일을 행할 때 대적하는 자들을 만나게 될 것을 경고하신다. 그들이 동네를 다니며 진리를 선포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낼지라도 그들을 배척할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족들에게도 미움받을 것이라고 하셨다(마10:34-38). 길 잃은 자들을 목자처럼 돌보려고 하면 그들은 필히 박해받을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대우는 제자들만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 본인도 당하실 일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회당에서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다. 이를 본 종교 지도자들은 분개하며 이렇게 묻는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마 12:10). 성경 말씀은 그들이 오로지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비난할 목적으로 예수님을 대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입장이 뒤바뀌어 지도자들이 오히려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지적을 당하자 그들은 그를 죽일 방법을 모의하기 시작했다.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계속해서 예수님이 (다른 장소에서) 눈먼 자, 말 못하는 자, 귀신들려 고통받는 자를 고치셨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기뻐하는 대신 예수님을 또다시 비방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마12:24). 예수님은 이것이 가당치 않다고 설명하시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렇게 요구한 자들은 바로, 눈멀고 말 못하고 귀신 들렸던 자를 예수님이 고치시는 것을 본 장본인들이자,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이러한 실상을 보며 예수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이것이 바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처럼 제자들도 배척할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유이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에게 배척받는 것보다 더 마음 아픈 것은 자신의 친족들에게 배척당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3장은 예수님의 형제와 어머니가 그가 행한 일에 대해 듣고는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라고 기록하고 있다(막 3:21). 예수님의 친족이 그를 미쳤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일어날 것이라 말씀하신 모든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

그러나 예수님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응답하신 질문은 무엇이었는가? 그를 따르는 자들이 오늘날 직면하게 되는 질문과 같다. “그를 따르는 소수의 사람들이 세리와 죄인인데 어떻게 예수님이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

“종교 지도자들이 당신을 배척하는데 어떻게 당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인가?” 사람들이 그에게 도전한다. “당신의 가족도 당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당신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래서 예수님은 이상한 곳에 씨를 뿌리는 농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이다. 뿌려도 결실이 없을 것을 이미 아는 바로 그런 곳에 씨를 뿌리는 농부 말이다.

‘단 하나라도 뿌리를 내리고 자라겠지.’라고 소망하며 길가에 씨를 뿌리는 그런 농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예수님은 그 씨가 새에 먹히고, 태양에 말라버리며, 잡초 때문에 기운을 잃고 말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씨 뿌리는 자가 자라지 않을 것을 아는 그런 곳에 의도적으로 씨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씨 뿌리는 자는 성경 전체에 일관되게 드러나는 하나님의 성품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하나님은 지금 말씀을 받아들일 자에게만 그의 말씀을 보내시는 것이 아니다.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모든 사람, 심지어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도 나누셨다고 말한다. 이렇게 행하시는 이유를 바울은 설명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1:20).

 하나님은 두 가지 이유로 말씀을 주신다: (1) 말씀을 기꺼이 받는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2) 그것을 거부하는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말씀을 받아들일 만한 자들만을 위해 말씀을 준비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그러면 안 된다. 하나님은 (그들의 선택에 따라) 말씀을 거부할 것을 이미 아시는 자들에게도 말씀을 보내신다. 그들이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지만 그들 자신이 선택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은 그들의 선택을 잘 아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에서 어둠을 끌어낸다. 이것은 이 어둠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어둠은 항상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요한복음 3장 20절에는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라고 쓰여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어둠을 드러낸다. 우리가 열심히 숨기려고 하는 행위를 드러낸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제자들이 말씀을 전한 첫 번째 집단인 유대인들에 의해 배척당하는 것을 본다. 바울은 심지어 유대인들에게 돌 맞고 죽게 내버려지는 일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직후, 그는 일어나 먼지를 털어내고 동네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그는 말씀을 훨씬 더 잘 받아들이는 전혀 새로운 무리(이방인)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말씀을 보내신다. 우리도 가서 이처럼 행해야 한다. 농부(씨 뿌리는 자)는 옥토 먼저 시작하지 않는다. 그는 씨가 자라지 않을 것이 뻔한 그곳에 먼저 씨를 뿌린다. 그런 연후, 그는 씨가 결국 죽고 말 것을 아는 다른 곳에 씨를 뿌리기로 한다. 옥토는 그가 맨 먼저 씨를 뿌린 곳이 아니라 네 번째로 선택한 토양이었다!

 

우리를 배척한다 해도, 고향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자!

종교 지도자가 우리를 위협한다 해도 계속 복음을 전하자!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의 친족과 복음을 나누자!

 

예수님은 고향에서 배척당하셨고(마13:53-58), 종교 지도자들에게 위협을 받으셨으며(마12:14), 친족들에게 미쳤다고 오해받으셨음에도(요7:5), 그의 멍에는 쉽고 그의 짐은 가볍다고 언급하시기 때문이다(마11:30).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의 비유에서 좋은 땅(옥토)에 떨어진 씨는 백 배의 결실을 맺게 된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마태복음 19장 29절에서 하신 약속을 상기시켜 준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결실에 대해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물질적 번영이 아닌 교회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러분이 복음의 씨를 뿌릴 때 그것이 가끔 옥토에 뿌려지는 것을 볼 것이다. 즉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을 것이다. 이 사람, 이 결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형제자매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배척할 때에도 교회는 항상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 곁에는 항상 형제자매가 있을 것이다. 문화, 민족적 배경, 정치적 견해, 교파, 혹은 이해관계가 다르더라도 이 형제자매가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가족, 여러분의 백 배의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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