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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실천

[듣기 마 10:40-42] “선지자의 상이란 무엇인가?”

Posted by Rev. Eric Foley on with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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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0:40-42

우리 대부분은 성경이나 혹은 신앙생활과 관련된 말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막상 그 말들의 정의가 뭐냐고 물으면, 우리가 내린 정의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임을 곧 깨닫게 된다. 신앙, 영생, 천국, 은혜 등이 좋은 예일 것이다. 신학교에 간다고 성경에서 비롯된 정의를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의 생각에 근거한 정의를 잘 포장하기 위해 더 많은 신학적 용어들을 사용할 뿐일 수 있다.

그 예로 오늘의 본문 말씀을 보자. 예수님은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신다. ‘선지자의 상.’ 우리의 눈과 마음은 이 말의 뜻을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이 구절을 지나친다. ‘선지자의 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큰 상’, 정말 좋은 어떤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이렇게 변하고 만다: ‘중요한 기독교 지도자를 환대하라는 요구가 있으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해. 그래야 큰 상을 받을 수 있잖아.”라는 식으로.

그러나 그런 식으로 성경을 읽으면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핵심 두 가지를 놓치고 만다.

첫째, 성경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책이라는 것을 놓치게 된다.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은 하나님에 대해 드러내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이차적으로(때로는 매우 중요한) 성경은 우리의 실상을 드러내거나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을 명령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성경 말씀을 읽든 항상가장 먼저 하나님의 성품을 찾아보아야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나 또는 우리가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성경이 주고자 하는 것, 즉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계시를 놓치게 된다.

둘째, 앞서 말한 방식으로 본문 말씀을 읽으면 전체 문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결과가 된다! 이 본문 말씀은 지난 몇 주 동안 공부한 전체 단락의 맨 끝에 오는 말씀이다. 10장 말씀은 예수님이,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잘하지 못함으로 인해 목자 없는 양같이 길을 잃어 위험천만해진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신 데에서 시작되었다. 종교 지도자들은 심지어 예수님이 한 모든 일이 마귀와 한패가 되어 한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예수님은 고심 끝에 열두 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파송하셔서 길 잃은 양들을 돌보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병자를 고치고, 나병 환자를 깨끗게 하며,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쫒아내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본문 말씀을 이해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맥 일부가 여기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길 잃은 양들을 돌보러 나갈 때 박해와 순교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마10:16). 마태복음 10:17 초반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21절에서는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라. 또한 9절에서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말씀을 전할 때 대부분 그들을 죽이려고 할 사람들을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했다.

이것이 본문 말씀의 문맥이다. 이 말씀들이 바로 예수님이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명심해야 할 첫 번째는 선지자들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존재들이다. 단지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메시지인 것이다. 선지자에게는 자신의 메시지가 없다. 그들은 단지주께서 말씀하십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선지자는 인간의 모습을 한 천사, 곧 하나님의 사자이다. 천사와 달리 인간인 선지자는 전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저항감을 드러내기도 한다(요나는 완강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이렇게 고백했다(렘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이처럼 선지자들은 메시지를 전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지자들의 뼈 안쪽에 붙은 불이 그들을 태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선지자가 메시지를 전한다 해도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이 외부에서 불을 붙여 어쨌든 선지자들의 뼈가 타게 한다!

이것이 선지자의 본질이다: 하나님에 의해 그들의 마음이 불붙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에 의해 외부가 불붙든 하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을 전한 것 때문에 돌에 맞았고, 참된 선지자는 진리를 전한다고 돌에 맞았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관점에서선지자의 상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명확하다: 죽음. 박해로 고난받고, 고난 이후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아주 고통스러운 죽음이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용사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선지자들이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36–38을 보면, 얼마나 많은 선지자가 고통 중에 죽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로 유리한 이유 중 하나는 선지자를 영접하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선지자를 영접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오바댜의 경우를 보라. 엘리야가 살던 당시에 관한 기록인 열왕기상 18:4은 이렇게 말한다.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다시 말하면, 오바댜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들을 영접한 것이다.

이세벨과 아합은 선지자들 모두, 특히 엘리야 선지자를 없애고 싶어 했다. 열왕기상 18:7-14은 이렇게 말한다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그를 만난지라 그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그러하다 가서 네 주에게 말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이르되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하려 하시나이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께서 사람을 보내어 당신을 찾지 아니한 족속이나 나라가 없었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엘리야가 없다 하면 그 나라와 그 족속으로 당신을 보지 못하였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거늘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말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나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영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말하였다가 그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말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니 그리하면 그가 나를 죽이리이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면, 선지자가 받는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비단 구약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도 이와 같은 일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마태복음 5:10-12에서 예수님은 의인이든 선지자든 자신을 따르는 자들은 모두 이러한 일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본문 말씀인 마태복음 10:41에도 의인이 언급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예수님이 마태복음 5:10-12에서 말씀하시려는 것 또한 의인을 영접하는 사람은 오늘날에도 죽을 것이라는 것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선지자와 의인이 받을 상에 대해 언급하신다. 그는 단지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상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신다. 분명한 것은 그 상은 이 땅이 아닌 하늘에서 받을 상이라는 것이다. 이 땅에서 선지자와 의인이 받는 것은 오직 의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받는 극심한 고난이다.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 때에 선지자가 받을 상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11:18에서 하늘에 있는 이십사 장로는 주님께 이렇게 부르짖는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작은 자라는 부분에 주목하라. 예수께서 본문 말씀인 마태복음10:42에서 말씀하셨듯이, 그들 또한 상을 받는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제 우리는 이 본문 말씀에 대해 중요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선지자, 의인, 심지어 작은 그리스도인을 영접하는 것은 위험한 일인 것이다. 그들을 영접하면 평생 동안 고난당하기 쉽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을 영접하면, 선지자, 의인, 그리고 작은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결론일 수는 있지만, 본문 말씀의 요점, 혹은 성경 전체의 요점으로 인도하지는 않는다.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무엇을 보여주는가?

여기서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을 발견한다.

그리스도가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한 사람에게 선지자의 상을 주신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에 관해서 정말 주목할 만한 점은, 그리스도는 선지자의 상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도 그 상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성품은, 그저 천국에 거하시며 그의 이름을 위해 이 땅에서 고난받는 자들에게 상만 주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니케아신경이 말했듯이, “그는 하늘에서 내려오셨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파송하여 자신을 위해 죽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직접 그들을 위해 죽으셨다.

마태복음 21: 33-39에서 예수님은 포도원 농부에 대해 말씀하신다.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이것이 바로 그들이 한 일이다. 마태복음 23:37에 보면, 예수님이 희생되실 때가 다가오자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둘러보시며 외치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34-36에서 선지자와 의인과 작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그리고 이 일은 실제로 성취되었다. 이 땅에서 흘린 의인의 모든 피는 결국 그 세대로 돌아갔고, 예수님은 그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지셨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라고 니케아신경은 말한다.

이것이 바로 본문 말씀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은 단지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신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사, 하나님을 위해 죽임당한 선지자들의 죽음을 똑같이 죽으신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용사들이 당한 고난을 열거하면서 히브리서 11:16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우리와 똑같은 일을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우리의 하나님, 임마누엘 하나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이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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