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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마태복음27:45-54]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리셨는가?

Posted by Margaret Foley on with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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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45-54

이방인들이 기독교를 접했을 때, 그들은 대부분의 성경 이야기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방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십자가였다.

구약성경에 드러나 있는 강하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의 아들은 십자가에서 죽도록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방인들은 조각 작품에서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표현할 때 칼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의 아들을 완전히 무력하게 있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십자가로 인해 혼란스러워 했던 사람들은 이방인들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도 십자가를 비극으로, 부활을 승리로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그분의 영광의 계시로 나타내신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했다고 말한다. 신약의 저자들과 초대교부들은 십자가를 하나님의 성품의 완전한 계시로 이해했다.

예수님은 모든 성경이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부활하신 이후,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며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자기에 관한 것을 제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눅 24:26, 27).

현대 신자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이 당혹스러워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이미지를 추종자들에게 배반당하고, 종교 지도자들에게 비난받으며, 가장 잔혹하고 수치스러운 죽음의 방법으로 처형당해 죽어가는 유대인 남자로 표현하기로 선택하셨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드러내는 데 있어 가장 이상하고 (혼동스러운) 측면 중 하나는 마태가 이렇게 기록한 예수님의 부르짖음이다.

“제구 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46).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리셨는가? 하나님은 실제로 자신의 아들에게 등을 돌리셨는가?

어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버리셨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를 결코 용납하지 못하시고 그리스도는 죄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성부가 모든 진노와 분노를 성자에게 쏟아 부으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졌으므로 우리가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용서받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은 초대교회와 니케아신경 그리고 성경이 주장하는 하나님과 매우 다르다. 니케아신경은 세 명의 신이 아닌 세 위격이신 한 분 하나님을 선포한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성부의 보이는 형상이 바로 성자이다. 십자가 사건에서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 다른 한 위격에 진노를 쏟아 붓거나,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 다른 위격을 버린다거나, 삼위일체의 세 위격이 완벽한 협력 없이 무언가를 한다는 개념은 성경과 교회의 증거에 반하는 분리되고 이질적인 것이다. 이것은 또한 예수님과 성부가 십자가 사건에서 협력하셨다는 예수님의 증언과도 맞지 않는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28-29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장에서 말씀하신 것과 일맥상통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19절). 마찬가지로,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49절)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 사건은 이 진리를 바꾸지 않는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지 않으셨다. “나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할 뿐이고, 아버지께서 말하라고 하신 것만을 말할 뿐이다. 하지만 성경을 성취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나를 버리시기 전까지만 말이다. 그때, 나는 근본적으로 혼자이고 자유롭게 말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나무 십자가 위에 있는 단순한 죄가 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속죄제이 되신 것이다. 이 속죄제물은 성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이지, 그분의 진노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사야도 이 속죄제물이 주님을 기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의에서 더 중요한 것은 성부의 성품이다. 성부 하나님은 절대로 그 어떤 죄인에게도 등을 돌린 적이 없으시다.

  • 아담이 죄를 지어 모든 인류를 영구히 죄에 빠뜨렸을 때, 성부 하나님은 (1) 아담을 찾으셨고, (2) 그와 대화를 나누셨으며, (3) 가죽으로 옷을 입히셨다(이것은 이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성자의 육신으로 가리실 것을 뜻한다).
  • 가인이 역사상 최초로 살인을 저질렀을 때, 성부 하나님은 (1) 가인을 찾으셨고, (2) 그와 대화를 나누셨으며, (3) 가인에게 보호의 표를 주셨다.
  • 인류의 죄악이 온 세상에 차고 넘쳐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실 때, 성부 하나님은 (1) 그럼에도 노아를 찾으셨고, (2) 그와 대화를 나누셨으며, (3) 그와 그의 가족을 곧 있을 홍수에서 구원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이 죄인에게 등을 돌리지 않으셨다면, 왜 자신의 독생자에게 등을 돌리시겠는가?

개중에는실제로, 하나님이 예수님께 등을 돌려 죄인들에게는 등을 돌리지 않으셔도 되셨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해결하고 계시는 문제가하나님의 문제이지 인류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추정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성경의 전적인 증거를 읽는다면, 예수님께서 버림받은 것에 대해 큰 소리로 외치는 다른 이유를 보게 된다. 다른 무엇보다, 위에서 언급한 요한복음의 구절들과 일치하는 것은, 예수님이 큰 소리로 외친 것은 바로 성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하라고 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거의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러하셨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이 예수님께 말하라고 하신 것은 시편 22편에서 직접 인용한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시편을 인용하는 것 이상으로 역사하고 계신다. 즉 시편 22편을 성취하고 계신 것이다.

시편 22편은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나를 버리셨나이다.”가 아니라, 질문으로 시작한다(“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만일 시편 기자가 처해 있는 상황을 보면 우리는 그가 버려진 것처럼 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6-8).

이 시편 말씀은 당신에게 어떤 것이 떠오르게 하는가? 이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다: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며 만일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라고 했다.

이전 글들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모든 성경을 성취하신다는 것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다윗은 시편 22편을 썼지만 완성시키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다윗의 손과 발은 결코 찔린 적이 없지 않은가. 그분의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는 이 성경을 성취하신 유일하신 분이 되셨다.

시편 22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그림을 계속 완성해 나간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14)”,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15),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18).

그러나 버려짐의 문제는 무엇인가? 흥미롭게도, 시편 22편은 버려짐의 시편이 아니다. 반대로 이 시편은 고통받는 자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임재에 대한 시편이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24).

십자가 사건에서,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께 분노를 쏟아 부으신 것이 아니며, 그분에게서 얼굴을 감추신 것도 아니다. 도리어, 성부 하나님은 도움을 구하는 아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셨다. 요한복음 829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에서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분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정확히 아셨던 것이다.

십자가에 계시된 하나님은 복수심에 불타거나 진노에 가득 찬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께서 성취하기 위해 오신 문제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지, 삼위일체 세 위격 간의 권투 시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십자가는 다른 성경 구절도 나타내는 완벽한 계시를 보여준다. 즉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완벽한 연합과 조화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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