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Of The Martyrs - Korea

Go

말씀과 실천

[듣기 마태복음 28:1-10] 부활절을 온전히 보기 원하는가? 훈련이 필요하다

Posted by Margaret Foley on with   Comments

순교자의 소리의 다른 영상들을 보기 원하시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마태복음 28장1-10

이 여성이 몇 살로 보이는가?

이 이미지를 본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 그림은 착시현상을 나타낸다. 이 여성은 굉장히 젊게 보이기도 하고 매우 늙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이미지를 처음 봤을 때, 아마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아마도 젊은 여성을 보았다면, 늙은 여성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혹은 늙은 여성을 보았다면 반대로 과연 젊은 여성을 볼 수 있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어떤 경우든, 또 다른 이미지를 볼 수 있게 하려면 누군가의 인도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다음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생각하길 좋아한다. 즉 한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의 한 가지를 보는 동안 다른 사람은 그 외에 다른 것을 볼 수도 있으므로, 우리가 함께 일한다면 완전한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씀은 다른 그림을 제시한다. 즉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보는 방법과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을 가르쳐주신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은 그저 맹인으로서 맹인을 인도할 뿐이고, 우리의 관점과 생각은 모두 심각한 결함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잘못된 질문을 하거나 성경에서 잘못된 것에 집중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왜곡되거나 부정확한 그림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 니고데모의 대화에서 보았듯이, 사람의 지식과 식견 그리고 경험으로 성경의 하나님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쨌든, 사울(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기 전의 바울)은 성경에 대해 전문가였지만 그는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올바른 질문을 알 수 있을까?

이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마태복음의 주제 중 하나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게 훈련받는 것, 하나님의 일을 찾아야 할 곳을 아는 것, 무엇을 물어야 할지를 아는 것이 핵심 주제이다. 영적 시각은 마태복음에서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보라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흔히, 마태복음에서 보라는 하나님의 진정한 본질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데, 특히 본문 말씀 마태복음 28장1-10절에서 그러하다.

안식 후 첫 날,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다. 이 구절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운데, 그 이유는 두 마리아가 잘못된 것, 즉 무덤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은 이 여자들이 예수님을 보러 갔다고 말하지 않고, 명확하게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을 보러 갔다고 말한다. 사실, 사람이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것은 사람인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 마리아에게는 그들의 생각을 인도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주목해 보라. 우리는 마태복음에서 사용된 보라”(behold) 부분을 통해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 “(보라)[1]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마태복음 28장2절).
  •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마태복음 28장5-7절).
  •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보라)[2]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마태복음28장9절).

마태복음 282절은 특히 흥미로운데, 이 지진은 불과 몇 일 전에 일어났던 지진에 이어 발생한 것이다. 마태복음 27 51-52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사 그분의 영혼이 떠나셨을 때 지진이 발생했고 다음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이 성도들은 자신들을 위해 무덤 문을 열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진 때문에 자유롭게 벗어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지진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이미 무덤을 떠나셨다. 이 두 번째 지진은 두 명의 마리아가 그분의 빈 무덤을 목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발생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주인이시므로 무덤 문이 닫혀있다 해도 그 무덤을 떠날 수 있으셨다. 무덤의 돌이 굴려져야 했던 것은 바로 그 증인들을 위함이었다.

그들이 지진을 목격했을 때, 천사는 여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와서, 보라.” 천사가 그들에게 말했다.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라고 말하라.” 비록 이 명령들은 두 마리아에게 한 것이지만, 부활을 증언하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여자들은 그 즉시 이 명령대로 제자들에게 갔다. 도중에 그들은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은 그들에게 안부를 물으셨다.

“평안하냐?” “두려워 말라.”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자들은 나아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다.

예수님은 그들의 경배를 거부하지 않으셨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그분의 신성을 보게 된다. 성경에서 천사 혹은 성인(saints)들이 경배받을 때, 그들은 경배드리는 사람을 꾸짖고 바로잡았다. “나를 경배하지 마시오!” 그들은 언제나 질책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경배를 받으신다. 그렇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자신의 천국 정체를 비밀에 부치실 이유가 더 이상 없으셨다.

여자들이 예수님께 경배하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짧은 문장은 그분의 위대하신 성품 세 가지를 드러낸다.

첫째, 예수님은 제자들을 당신의 형제들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진지한 사랑이요, 배려요 그리고 용서이다. 십자가 사건 때,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려 예수님을 저버렸다. 예수님이 자신의 형제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은 이미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배반한 자들을 용서하시며, 그분의 영원한 희생을 통해 죄를 씻어주신다.

둘째, 예수님은 여자들에게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왜 갈릴리인가? 제자들이 자신을 배신할 것을 예견하자마자 그 즉시 제자들에게,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셨던 약속을 성취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심지어 우리는 그 약속을 망각함에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할 때, 우리는 교회의 첫 모습을 보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혹은 베드로가 교회를 시작했다고 언급하지만, 실제로 여기에서, 바로 그리스도의 발 앞에서 첫 교회가 시작되었다.

 

[1] 개역개정에는 생략되어 있으나 NKJV에는 behold(보라) 단어가 사용되었다.

[2] 위와 동일.

 

Tags: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부활, 부활절, 예수님, 하나님의 성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