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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눅 9:28-36] “사도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

Posted by Margaret Foley on with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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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28-36

하나님과 흥정하려고 했던 적이 있는가?

하나님과 흥정한다는 것은 마치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일 수 있다:

“하나님, 저를 승진시켜 주심으로써 하나님을 드러내시면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심을 알고 믿겠습니다.”

“하나님, 만일 진짜 계시다면, 그녀가 저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믿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제가 제시간에 직장에 도착하게 해주세요. 그러면 믿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과 흥정한 적이 있다.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아마도 다음 두 가지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나님이 엄청난 자비를 베푸셔서 (1) 당신의 청을 들어주셨거나(그런데 당신은 그것을 운이나 당연히 일어날 일로 여겼을 수 있다), 혹은 (2)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셨을(이 경우 아마도 당신은 하나님이 진짜 계시는지 궁금해했을 것이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궁금해할 이유는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증인된 사도들의 증거 위에 교회를 세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과 흥정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직접 증명하지 않으신다. 이는 서면 형태로 신약성경을 기록한 사도들의 간증을 듣고 이 간증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에 의해 확증되면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에 우리는 좀 망설일 수도 있다. “하나님이 실제로 나타나시거나 나의 특정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성령님이 확증하시든 그러하지 않으시든 나는 그가 실제인 것을 알 것이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면 이것이 진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실제로 가장 종교적이고, 학식이 있으며,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으나 모든 사람의 오해를 받으셨(을뿐 아니라 부당한 대우를 받으셨). 이러한데 왜 우리의 반응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게다가 많은 학자가 지적했듯이,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해야 한다. 만일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려면, 먼저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유니콘이 뿔이 달린 말임을 모른다면, 그 존재를 부인(혹은 입증)할 수 없다.

감사하게도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표현들로 넘쳐난다. 사실 사도들의 증거 위에 교회를 세우시기로 한 하나님의 선택마저도 하나님의 성품에 관해 무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중요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첫째, ‘사도라는 단어는 현대 기독교 어휘 중 가장 오용되고 있는 단어 중 하나이다.

기독교인의 삶에 대해 특별한 통찰력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언급할 때 우리는 간혹그 사람은 현시대의 사도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도행전 1:12-26에서 볼 수 있듯이사도라는 단어를 아주 다르게 정의한다.

예수님은 지상 사역을 하실 때 열두 사람을 불러 사도로 세우셨다. 성경이 예언한 대로 이 사도 중 한 명이 예수님을 배신한 후 자살하였다. 따라서 성경 말씀에 따르면 남은 열한 사도들은 새로운 사도가 임명될 필요가 있음을 인식했다. 다음은 사도의 자격 요건의 기준이다:

  •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행 1:21-22).
  •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택하신 사람이어야 한다(이것이 바로 사도들이 사도행전 1:24-26에서 사도의 선택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이유이다).

이 열두 사도 외에도 흔히 사도로 불리는 사람이 두 명 더 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야고보는 믿지 않았다. 그리스도가 행하신 모든 일을 본 증인이면서도 다른 친족들처럼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다(막 3:21). 그러나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야고보는 굳건하게 믿는 자요,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다

또한, 바울의 경우도 특이한 것은 그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예수님과 접촉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을 바울에게 보이셨기 때문에 바울은 사도로 불린다(행 9:1-9). 사도행전 9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그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한그릇으로 택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15-16). 이로써 바울 역시 사도의 자격을 갖춘 셈이다.

니케아신경을 통해 우리는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 교회를 믿는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 신앙의 길이, , 높이, 깊이가 사도들의 증거에 전적으로 의지함을 뜻한다. 우리는 이 증언에서 단 하나라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닐 것이다.

만일 어떤 목사, 교사, 교회, 혹은 그 어떤 기독교 단체라도 하나님이 그들에게만 어떤 특별한 교리적 가르침을 주었다고 주장한다면 거기서 도망쳐야 한다. 기독교 교회는 사도적 교회이므로, 하나님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사도들에 의해 이미 목격되었으며 그 증거는 신약으로 기록되었다. 교회의 다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단체는 기독교가 아니라 이단이다.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1:13-21에서 이에 대해 진술한다. 사도는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르지 않고 대신,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고 설명한다. 베드로후서 1:20에서 그는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기독교 교리에 비밀스러운 가르침이나 혹은 성경이 쓰인 이후의 묵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의 모든 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베드로, 요한 및 야고보는 누가복음 9:28-36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산에 올라갔다. 여기서 그들은 많은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의 얼굴이 변했고 그의 옷은 희어져 광채가 났다(흥미롭게도광채가 나는’<dazzling>이라는 영어 단어는 번개를 뜻하는 단어와 같다). 구름이 그들을 덮었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

‘모세구름을 듣는 즉시 우리의 생각은 출애굽기로 돌아가야 한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구름 기둥의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셨다. 산 위에서 모세가 보였고 구름이 사도들을 덮었다는 부분을 읽을 때, 우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곳에 계심을 알게 된다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 한 명인 엘리야도 거기 있었다. 평생토록 엘리야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았다. 따라서 엘리야가 나타났다는 것은 선지자들의 하나님이 그곳에 계셨음을 뜻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제물로 드릴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을 목격했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폭력이나 어떤 상황의 희생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존재에 대한 예루살렘의 반응은 그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예수님 자신의 의지로 일어난 것이다.

성경을 읽어보면 구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가득 차 있고, 신약은 메시아를 따르는 사람들의 간증 증언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이 연결되는 방법이며, 베드로후서 1:19에서 베드로는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라고 함으로써 선지자의 메시지가 의심의 여지없이 확인되었다고 알려준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달라고 간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분의 의지로 우리의 이기적인 협상에 복종함으로써 그의 존재를 확인해달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하나님이 그의 진정한 성품을 표현하도록 허용하기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그에 대한 이해를 제한한다.

그럼 하나님께 주님을 보여달라고 청하면 안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세례 요한조차도 의심의 눈으로 예수님께 왔었다(마 11:2-6). 중요한 것은, 자신을 드러내시기로 하나님이 택하신 그 방식 자체를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표적을 위해 기도하는 대신, 그가 주시는 표적을 이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도들의 간증의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을 기도해야 하며, 그분이 그렇게 하실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사실, 베드로후서 1:19에서 베드로는 이 간증(그리고 선지자들의 간증)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이라고 부르며 우리가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간증의 진리가 우리 마음에 아직 확증되어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한다. 그것은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기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이 그것을 확인해 주시기 전에 우리는 이 진리를 믿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성령 하나님이 그것을 확인해 주셨기 때문에 믿어야 한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20:29에서 도마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보지 못하고 (혹은 성령 하나님의 확인을 받지 않은 채) 믿는 자들은 가장 복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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