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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나님, 새 민족

Posted by Margaret Foley on with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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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 때, 케네스 웰즈 박사는 아시아에 대해 낯설어 하지 않았다.

웰즈 박사의 외조부모는 1912년부터 1934년까지 중국에서 선교사로 섬겼고, 뉴질랜드로 돌아온 후에는 웰즈 박사가 생각하던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을 향해 눈을 뜨게 해주었다. 그는 외조부모로부터 중국 한자를 배우기도 했다. 고등학생 시절, 웰즈 박사는 교환 학생으로 11개월간 한국에서 지냈다. 고국에 돌아가 대학에 입학한 웰즈 박사는 (한국어 강좌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일본어와 아시아 역사 강좌를 들었다.

웰즈 박사가 연구하면서 발견한 것 중 하나는, 한국은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는 나라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왜 아시아 국가 중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기독교가 뿌리내릴 뿐 아니라 번성하게 되었을까? 웰즈 박사는 자연스럽게 석사논문을 일제 강점기의 한국 민족주의 연구에 할애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웰즈 박사는 새로운 한 가지 의문점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일제 강점기에 많은 개신교인이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개신교인이 기껏해야 전체 인구의 3%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그들이 이 운동에 끼친 영향이 대단했다는 것이다. 또한 웰즈 박사는 이 현상을 더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개신교와 민족주의 사이의 연계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임을 발견했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보편적이다. 어느 특정 국가나 정부에도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2:12은 한국 몸, 미국 몸, 러시아 몸 등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이 말씀은 우리 모두 하나의 몸이라고 명백히 밝힌다. 니케아신경 또한 많은 교회가 아닌, 오직 하나의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가 있다고 설명한다. 민족주의처럼 기독교를 한 나라에 한정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이점을 고려하면,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의 개신교인들이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게 맞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다. 왜 그랬는가?

웰즈 박사는 연구를 통해 한국의 개신교가 직접적으로 민족주의의 한 형태를 형성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웰즈 박사가자기 개조 민족주의’(self-reconstruction nationalism)라고 번역한 형태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물론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여러 형태의 민족주의에 연루되어 있었다. 그러나자기 개조 민족주의는 전적으로 한국의 개신교인들에 의해 탄생한 민족주의로, 개신교와 민족주의의 관계를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자기 개조 민족주의의 창시자는 정치 활동가이자 사상가인 윤치호 선생이었으며, 가장 열렬한 운동가는 널리 존경받는 안창호 선생이었다. 이런 형태의 민족주의는 일제 식민지 통치 정책이 중요한 정치적 지위나 사업 운영으로부터 한국인을 제한하던 때에 출현했다. 근대화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이를 묵살하고, 농업적 지원으로 일본을 돕는 데 한국을 이용했다. 웰즈 박사는『새 하나님, 새 민족』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계획으로 인해 1910년부터 1938년 사이에 한국의 쌀 생산량이 거의 두 배가 되었지만, 같은 기간 일본으로의 쌀 수출량은 한국의 연간 생산량의 40퍼센트를 차지하여 20배나 증가했다. 반면 한국의 쌀 소비량은 거의 절반으로 감소했다…”(웰즈, 『새 하나님, 새 민족』, 207)

그렇기에 한국인들은 민족의 정체성 부재를 통렬한 아픔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당시의 질문은한국이란 나라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이 정체성을 쟁취할 수 있는가?”였다. ‘자기 개조 민족주의는 한국 개신교인들이 이 질문에 답하는 시도였다

‘자기 개조 민족주의의 핵심은 각 개인이 회개하고 자기 자신을 새롭게 개조할 책임을 다할 때 새로운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 데 있었다. 예를 들어, 안창호 선생은 이렇게 믿었다

“현실은 어디에서나 동심원이며, 그 변화는 지각의 중심에서, 즉 인간의 영성에서 시작되어 그 밖의 모든 것이 변화될 때까지 외부를 향해 작용한다”(웰즈, 『새 하나님, 새 민족』, 256)

다시 말하면, 새 국가의 창설은 사람들의 발전과 변화에 달린 것이다. 안창호 선생은토양이 나쁘면 씨앗이 아무리 좋더라도 여전히 나쁘다.”라고 썼다. 사람들이 여전히 죄가 있다면, 어떻게 새로운 나라가 더 나아질 수 있겠는가

자기 개조 민족주의자들은 이 개혁에 대해 그저 말만 하지 않고 그것을 살아냈다. 윤치호 선생은 자기 개조가 일어난 모범 공동체를 세운 첫 번째 인물이었다. 안창호 선생과 조만식 선생도 곧 윤치호 선생의 본을 따라 자기들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공동체에서 윤치호, 안창호, 조만식 세 선생은 자기 책임과 시민 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각 개인에게는 자기의 성격을 교정하고 공동체 전체를 고양시킬 책임이 있었다. 윤치호 선생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동체에 대한 이 책임을 기독교 청지기 교리로 풀이했다.

자기 개조 민족주의자들은 또한 한국 경제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운동 초기, 한국인들은 한국 물산보다 일본 물산을 더 선호했기 때문에 한국 경제가 허덕이고 있었다. 조만식 선생은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하여 국산품 애용 운동을 펼침으로써 한국 경제를 회복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웰즈 박사가 발견한 한 가지 사실은, 자기 개조 개신교가 현대 비평가들에 의해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많은 비평가들은 그것을 되돌아보고 이해할 시간을 가지지 않은 채 운동을 비판한다

웰즈 박사는 말한다. “만일 시간을 충분히 갖고 연구한다면, 자기 개조 운동이 실제로 놀라운 운동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운동에서 개신교인들은 기독교 교리가 그들의 시대에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수준 높게 제시했고, 그 답변은 상당히 치밀합니다.”

자기 개조 민족주의는 이 세상의 것들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주로 현재의 물질적인 것들이 아닌, 장차 올 세상의 좋은 것들에 초점을 맞춘 세계관을 제시했다. 명백한 역설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보편 교회와 민족, 개인과 사회, 그리고 하늘나라를 추구하는 것과 이 땅에서의 박애 사이에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자기 개조 민족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경향이 있지만 주의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비판에 잘못된 것은 없다. 비판은 필요하고 유익하다. 그러나 비판은 정확한 사실에서 시작해야 한다. 종종 오늘날 우리는 비평가들에게 답변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 개조 민족주의와 같은 운동을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웰즈 박사가 아래의 말로 회견을 마감한 이유이다

“저는 저의 책을 통해서라도 한국 초기 기독교인들이 답할 기회를 얻기를 소망합니다.”

자기 개조 민족주의 운동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웰즈 박사의 책을 먼저 읽어보라. 영어본(아마존 링크)과 한국어본 모두 링크를 통해 구매할 수 있다

Tags: 새 하나님 새 민족, 안창호, 윤치호, 조만식, 케네스 웰즈 박사, 한국, 한국 교회, 한국 초기 교회